칼럼니스트 2003년 9월 10일 No. 85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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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인적자원국'(1)
'인적자원'이란 말

인적자원이란 말은 헌법 어느 구석에도 없다. 이 말을 정부나 언론이 빈번히 쓰기 시작한 것은, 2000년 1월 김대중대통령이 교육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신년사에서 밝히고나서, 2월에 과기부와 산자부를 방문하여 첨단 기술 발전에 따른 고급 인력의 수급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뒤다.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근거하여 ‘평생교육법’이 있다. 이 법에 제16조 ‘인적자원의 활용’을 2000년 3월에 넣었는데, 여기에 처음으로 ‘인적자원’이 법의 용어로 등장한다. 그런데 그 뜻이 무엇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2001년 1월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폭넓게 인적자원 개발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개편하고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켜, ’국가 인적자원개발 정책‘을 종합적으로 관장토록 하였다. 그 후속 조치로, 2001년 12월 정부 각 부서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만든 ‘국가인적자원개발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2002년 8월에 ‘인적자원개발기본법’을 공포하였으며, 여기에 인적자원의 정의를 써 넣었다. 이어 2003년 2월에 기본법의 시행령을 제정, 공포하고, 5월에는 시행령에 따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을 ‘인적자원개발지원센터’로 지정하고, 7월에 교육인적자원부장관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원센터 개소식을 가졌다.

위와 같은 진행으로, 처음에는 ‘인적자원‘이 IT, BT 등 이른바 6개의 국가 전략 분야의 고급 인력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3-4년 지나면서 그 내용이 부풀려져 2003년 현재는 사람 무리에는 어디에나 붙여대는 공식적인 호칭이 되었다. 듣는 국민으로서는 자원이라 불려 유쾌할 리 없다. 이 기분을 삭이기 위해서라도 도대체 정부가 말하는 인적자원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전을 보면, ‘자원’을 인적자원과 물적자원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물적자원은, 생산에 직접, 간접으로 이용되는 철, 석탄, 토지, 물 등(기초 자원)과 나무, 짐승, 물고기 등(천연 자원)으로, 모두가 형체가 있는 것들이다. 한국인은 자원이라면 이 물적자원 즉 사람이 아닌 다른 물체를 떠올린다.

헌법에도 ‘자원’이란 낱말이 있다. 제120조에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 이다. 여기서의 자원은, 물적자원과 에너지인 자연력을 아울러 표현하였다.

그런데 인적자원은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혼란스럽다. '人的’은 '사람의' 라는 뜻이다. 언뜻 생각하면, ‘인적‘이나 ‘사람의’ 나 같은 말이니, 그 쓰임새도 같을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두 낱말은 성격이 다르며, 또 다르게 쓰인다.

즉 ‘사람의’ 라는 말은 웬만한 낱말 앞에는 어디에나 붙일 수 있다. 그러나 ‘人的’은 극히 한정된 낱말 앞에 붙어 전문용어 투로 쓰이는데, 인적사항, 인적피해, 인적담보, 인적회사 등이 그런 예다. ‘인적’의 뒤에 붙는 낱말은, 사람과 연관은 있지만 사람 자체는 아닌 것이다.

인적자원은 그런 원칙을 벗어난 것이다. 즉 인적자원을 풀어 쓰면 ‘사람의 자원’이다. 여기서 사람과 자원을 같은 것으로 보아, 인적자원이 곧 사람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2000년 초 인적자원이 빈번히 등장할 즈음 발표된 산업정책연구원(IPS)의 국가경쟁력보고서에 나오는 인적자원의 의미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뜻이라면 ’사람‘, ’사람 수‘ 또는 ’인구’라 표현하여도 될 것을, ‘인적‘과 ’자원‘을 번거롭게 중복시킨 것이다.

또 하나 다른 의미의 인적자원이 있다. ‘사람의 노동력’ 즉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힘‘이라는 뜻이다. 이 인적자원이 ’인적=사람의‘, ’자원=노동력‘으로, 언어 구성상 논리에 맞다. 그리고 사람의 노동력이, 재화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란 면에서 물적자원과 바르게 대비된다. 또 소나 말의 노동력과 구분한다는 뜻으로도, 이 의미의 인적자원이 제격이다. 미국의 ‘국가 자원 위원회’가 표현한 인적자원도 Human Resources Manpower로 사람의 노동력이다.

이와 같이 논리에는 맞으나, 우리말에서 이 의미의 인적자원이 널리 쓰이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의 노동력을 ‘인력(人力)’이라 하면 되지 구태여 '인적'과 '자원'을 써서 딱딱하게 표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 이 인적자원 대신 ‘인력’ 또는 ‘노동력’이라 표현한다.

그런데 정부는 인적자원개발기본법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인적자원이라 함은 국민 개개인, 사회 및 국가의 발전에 필요한 지식, 기술, 태도 등 인간이 지니는 능력과 품성을 말한다’ 이다.(법 제2조 1)

이 법의 인적자원은, 위에 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의 사람이나 노동력이 아니다. 의미를 새로 꾸며냈는데 그 내용이, 사람의 육체는 빼고, ‘발전에 필요한’이란 조건을 달아, ‘인간이 지니는’ 총체적인 정신 작용을 일컬어 인적자원이라 하였다.

이 정의는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그럴 듯해 보이나, ‘국민 개개인, 사회, 국가‘ 세 가지를 늘어놓은 데 논리의 모순이 있다.

이 셋의 '발전에 필요한’ 것은 각각 다른 것일 수 있다.그렇다면 인간이 지니는 ‘능력과 품성’은 헤아리기조차 힘든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그것을 누가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구분하여 인적자원이라 할 수 있는가다.

만약 셋의 '발전에 필요한’ 것이 같은 것이라면, 구태여 법을 만들어 정부가 개발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 국민 개개인은 자기의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본능이며, 거기에 따라 국민 개개인의 집합체인 국가도 자연히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 셋을 늘어놓은 것은, 명확성이 기본이어야 할 법 조문으로는 부당한 표현이다. 이 의미는, 누구나 특히 권력자의 멋대로 ‘발전에 필요한’ 것을 정할 수 있게 만든 것이며, 인적자원이 사유화(私有化)할 가능성마저 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적자원을 ‘능력’과 ‘품성’ 두 가지로 나누었다. 이 중에 ‘능력’은 예로 든 지식과 기술을 가리키는 것일 텐데, ‘사람의 노동력’을 넓게 해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지식과 기술은 ‘인적 능력’으로, 재화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힘’이라 보는 것이다.

그런데 품성을 인적자원이라 한 것은 언어의 개념을 무시한 것이다. 품성(稟性)은 사람 자체인 인격(人格)이며,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본질이다. 즉 돼지는 돼지, 소는 소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이 품성 곧 인격이 있어서다. 만약 돼지의 품성을 바꿀 수만 있다면, 돼지가 소도 되고 사람도 된다. 따라서 품성은 품성인 것이지, 인적자원 곧 사람의 자원이고 뭐고 할 것이 없다. 굳이 인적자원으로 표시한다면, ‘사람의 사람’이란, 말도 아닌 말이 된다.

품성의 사전 풀이에도, ‘천생(天生)으로 타고 난 성품’으로, 이를 제3자가 강압적으로 개발, 발전, 조정 따위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인권이니 기본권이니를 주창한다. 이와 같은 품성의 개념은, 개인의 생각만이 아니고, 오래 전부터 사상적으로 그리고 학술적으로 굳어진 것이다.

법에서, 예로 든 ‘태도’를 품성이라 본 것 같다. 그러나 이 태도는 근무 자세, 근로 의욕 등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에 한정시킨 표현을 써야만 한다. 이것을 비약시켜, 국민 개개인의 발전이란 구절을 넣고, 품성 자체를 인적자원이라 하는 것은 사랑, 자비, 슬픔 따위도 자원으로 본다는 상식밖의 얘기다.

정부나 언론이 ‘사람’을 가리켜 인적자원이라 부르는 것은, 법에서 ‘능력과 품성’이라 정의한 것과 다르다. 그리고 그 정의를 얼토당토 않게 세워 놓고, 정부가 인적자원 개발을 왜 집요하게 들먹이는지를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 (계속)

- 2003.09.10

홍순훈

아하출판사 대표
herb-k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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