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9월 7일 No. 846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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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덫’에 걸린 사회

    “한국은 앞으로 무얼 먹고살아야 할지 그저 까마득하기만 하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의 말이다. 노조의 목소리가 커지자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한 발언이지만 ‘무얼 먹고살아야 할지’ 걱정이다. 기업들은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 상승에 경쟁력은 떨어져 투자의욕을 상실했다. 해외에 나가 공장을 차리는 기업이 늘고있으니 일자리 창출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거리엔 ‘청년 백수’들이 넘쳐난다. 젊은이 4명 중 1명 꼴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3분기 중 채용계획이 없는 기업이 76%에 달한다는 노동부 조사결과도 나왔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이력서조차 낼 곳이 없는 것이다. 취업희망자 10명 가운데 3명은 아예 취업을 포기해 버렸다.

    어디를 둘러봐도 숨통이 막힐 지경으로 답답하다. ‘빈곤의 덫’에 걸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가계 빚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자녀와 함께 동반자살한 주부도 있다. 서민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재벌 2세도 ‘어리석었음’을 자탄하고 죽음을 택한 세상이 아닌가. 수도세와 전기료를 못내 수도와 전기가 끊긴 정도로 빈민층이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나라 빈곤층에 대한 복지제도는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 ’라는 결함을 안고 있다. 전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전무는 차상위 계층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135만명에 달하는 수급자에게는 연간 2조3천억원의 예산으로 생계비·의료비에서부터 집 수리비까지 20여 가지의 혜택을 준다. 차상위 계층 320만명에게는 경로연금·모부자 가정 아동양육비 등으로 51만명에게 연간 1800여억원이 지원되는 게 고작이다.

    아파도 병원 못 가면 더 서러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급대상자 선정의 경직성이다. 70대 중반의 한 할머니는 몇 년째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끼니는 인근 교회에서 때우고, 잠자리는 가까운 경로당에서 해결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 할머니는 정부의 생계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에게 부양능력이 있는 외아들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들은 외환위기 때 어머니의 전세금까지 빼내 사업을 했으나 실패한 뒤 연락조차 끊긴 상태다. 이렇듯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는 기준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어 실제 혜택을 받아야 할 빈곤층이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일부 극빈층은 국가지원에 안주하려는 경향까지 엿보인다. 이 같은 도덕적 해이는 이미 선진국에서 증명됐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한 달 40만원밖에 벌지 못하면 현금 기준 최저생계비(4인가족 기준 89만7000원)에 모자라는 49만7000원을 정부에서 지원 받는 반면, 아예 벌지 않으면 89만원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기간을 제한하지 않으면 ‘빈곤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복지의 사각(死角)지대에서 벼랑 끝 생활을 하는 차상위 계층인 ‘준극빈자’들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보다 월 소득이 최고 20만원 더 많거나 부양능력이 있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에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계층이다. 정부에서는 320만명 정도라고 하지만 얼추 추정한 것이다. 질병 현황 등 생활 실태 조사도 안돼 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차상위 계층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다시 수급자로 전락했는지 조차 추적 관리가 안돼 있다.

    차상위 계층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의료비 지원이다. 이들은 “돈 없어서 못사는 것도 서러운 데 아파도 병원 못 가는 것은 더 서럽다”고 한다. 그래서 시민단체나 사회복지계에서는 차상위 계층 가운데 아픈 사람에게는 의료비를 지원하고, 중?고생이 있으면 교육비를 지원하는 식으로 필요한 부분만이라도 혜택을 주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준극빈층에게 의료비·교육비 등을 지원하겠다던 정부의 공언이 공수표가 될 공산이 커졌다. 당국의 예산 심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58주년 8.15 경축사에서 “경제가 회복되는 대로 빈부격차를 줄이고 의지할 데 없이 죽음으로까지 내몰리는 사람들이 없도록 사회안전망을 다시 정비하겠다”고 밝혔으나 예산의 뒷받침이 관건이다.

    일자리 제공이 최선의 복지

    준극빈층은 경제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극빈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 예비 극빈자와 마찬가지다. 이들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없으면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차상위 계층은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취업자들이다. 다양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복지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어느 사회든 빈곤층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대로 빈곤한 사람이 많이 생겨나면 사회안정을 해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빈곤의 대물림 현상이다. 자식에게까지 가난을 물려줘야 한다면 그처럼 큰 고통은 없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빈곤의 일차적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를 이어간다면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문제로 넘어간다.

    우리사회에 빈곤의 대물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걱정스럽다. 소득이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서울 극빈층의 경우 59.7%가 부모로부터, 그리고 32.7%는 할아버지 때부터 가난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여기에 10명 중 7명은 만성질환에 시달리고있어 빈곤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 가운데 탈빈곤 장치는 자활사업이다. 근로 의지를 불어넣고 기술을 가르치거나 일자리를 알선해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려면 현행 기초생활보장제의 결함부터 손질하고 보안해야 한다. 담배 값을 올려 빈곤층을 지원하겠다는 등 땜질식 정책으로는 가난구제를 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꺼져 가는 성장동력을 되살려 고용창출을 극대화할 것인가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가난할 수록 일자리보다 더 좋은 복지는 없다.

    - 저널 뉴 코리아 9월호 (2003.09)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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