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9월 3일 No. 844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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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를 홈쇼핑으로 결정하는 사람들

TV가 널리 보급되고 컴퓨터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으면서 여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 TV홈쇼핑은 소비자가 직접 매장까지 가지 않고서도 제품의 질이나 내용을 잘 알 수고, 즉시주문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현대적인 판매형태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케이블TV가 등장하면서 분야별로 다양한 프로그램 채널이 생겨났는데, 특히 홈쇼핑 전문채널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홈쇼핑이 얼마나 장사가 잘되기에 요즘에는 무허가 홈쇼핑까지 극성을 부리고 있을 정도이다.

야후에서 「홈쇼핑」을 검색해보면 9월1일 현재 TV채널이 43곳이고, 인터넷 쇼핑몰까지 합치면 1백8곳이나 된다. 통계청 조사로는 지난해 11월 사이버쇼핑몰 사업체수가 2천8백74개로 나타났다. 무허가까지 합치면 우리나라 전체 홈쇼핑 업체수는 3천개는 넘지 않을까 싶다.

홈쇼핑채널의 등장과 함께 「쇼핑호스트」라는 전문직도 생겼다. 홈쇼핑 프로그램에는 대학교수 등 유명 인사나 연예인, 스포츠스타들이 등장하지만, 진행은 이들 쇼핑호스트들이 맡고 있다. 쇼핑 호스트의 능력에 따라 상품 판매량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활동중인 쇼핑호스트가 1백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넷사이트들도 홈쇼핑을 주요 수입원으로 삼고 저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회원들이 적어도 수십만에서 수백만명에 이르지만 웬만한 컨텐츠는 무료로 봉사하는 만큼 광고외에 아바타판매나 경매, 공동구매, 장터 등을 개설하고, 특히 쇼핑에 주력함으로써 무료서비스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거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홈쇼핑채널이 늘어나면서 홈쇼핑에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하니 예삿일이 아니다. 홈쇼핑 프로그램을 계속 청취하다 보면 구매충동을 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걸 참아내지 못하고 몇번 구입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중독돼버리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한 TV홈쇼핑업체가 방송한 「캐나다이민 알선서비스」상품에 1천명에 가까운 신청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조기종영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90분 예정으로 방송이 시작됐지만 상품이 뜻밖에 일찍 팔리는 바람에 10분 정도 일찍 중단했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새벽까지 추가신청 문의가 들어올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이날 매출액은 자그마치 1백75억원으로 이 홈쇼핑의 일주일치에 해당하며, 단일품목의 주문액으로는 사상 최고 규모로 분당 2억2천만원어치가 팔린 셈이다. 이민 희망자 중에는 20∼30대가 전체의 62%를 차지해 관계자들도 놀랐다고 한다. 필자도 “요새 30∼40대의 화제는 이민 아니면 로또”라는 시중의 농담을 들어보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충격은 크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네티즌들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 긍정적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민이라.. 000씨가 대통령 되고 난 뒤로 정부도 못 믿겠고, 언론도 못 믿겠고, 나도 할 수만 있다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80분 동안의 홈쇼핑 방송에 자기 인생을 그렇게 빨리 결정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로다."(hiyoco)」  
 
"20-30대가 62%라? 그놈들 이민 갈 때 부모들은 단돈 한푼도 쥐어 줘선 안 된다. 너무 돈으로 편하게 키운 우리들의 잘못이고 업보다."(Greenzone)

"바보들... 이민까지 홈쇼핑에서 사냐? 아이고, 정말 엉망이구먼. 자신의 미래를 홈쇼핑에서 산다. 참으로 해외토픽에 날만한 일이구먼."(junpyo)
   
"이민을 왜 좋지 못한 생각만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해외입양도 세계 1위이다. 그러면서 입양에 문제점만을 이야기하면서 대책은 없다. 또한 이민도 문제점만을 토론하면서 대책은 없다. 대한민국이 최고다 라는 생각은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생각이다."(charlesblue)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입시지옥으로 엄청난 사교육비가 들게 돼있는 교육제도가 이들을 이민대열로 내몰고 있다고 말한다. "「사오정(45세 정년)」이란 유행어처럼 직장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어서 더 이상 나이 먹기 전에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찾고 싶어서”이민을 신청한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올 연초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조사대상인 20세 이상 남녀 1천5백명 가운데 "우리 사회가 살기에 좋지 않다"는 대답이 64%였고, "이민을 가고 싶다"는 대답은 40%를 넘었다. 우리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의 불안이 겹쳐 이 땅을 벗어나겠다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세계는 하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금은 모든 것이 글로벌화 돼가고 있는 시대이다. 우리의 이민역사도 이제 한 세기를 훌쩍 넘었다. 이런 마당에 보다 나은 삶과 자기성취를 위해 외국으로 이민 가겠다는 사람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급속한 노령화에 인구는 제자리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20∼30대가 떠나는 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홈쇼핑업체에서는 기막힌 아이디어로 엄청난 히트를 쳤다며 희희낙락하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고울 수만은 없다. "불과 80분 동안의 홈쇼핑방송에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가"라고 비아냥거린 어느 네티즌의 말이 뇌리에 박힌다.

세상이 하도 급변하다 보니 앞으로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모르겠다. 그 것은 우리를 기쁘고 반갑게 하기보다는 우울하고 씁쓸하게 할 거라는 느낌이 든다. 이번 「사건」은 홈쇼핑전성시대를 맞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해주고 있다.
- 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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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http://columnist.org/netporter/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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