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9월 2일 No. 843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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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지는 풍물 - 죽방렴·테우
원시적 고기잡이 죽방렴을 아시나요

바다는 어부들의 삶의 텃밭이다. 농부들이 흙에 씨앗을 뿌리듯 어부들은 바다에 삶의 그물을 던진다. 연근해의 어자원 고갈로 어부들은 먼바다를 향해 어로(漁撈)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요즘은 음향계측기, 음향급이기, 어군탐지기, 수질환경센서, 수중카메라 등을 갖춘 어선에서 인공위성까지 활용하여 고기를 잡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경남 남해 지족해협에는 원시적 방법인 죽방렴(竹防簾)을 요즘도 이용한다. 제주에서는 몇 년 전까지 테우를 이용해 자리돔을 잡았다.

바닷물길 이용 멸치 떼 잡는다

#경남 남해 죽방렴

죽방렴을 이용한 고기잡이는 원시적 방법이지만 아직도 경남 남해에 가면 볼 수 있다. 죽방렴은 물살이 드나드는 좁은 바다 물목에 세운 대나무발 그물이다. 현지 주민들은 '대나무 어사리'라고도 한다. 물살이 흘러드는 쪽을 향해 부채꼴 모양으로 참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고 끄트머리에 '불통'이라는 볼록한 그물 통을 만들어 놓는다. 물살을 따라 흘러 들어온 고기들이 불통에 갇히게 된다. 불통은 들물 때는 열리고 날물 때는 닫히도록 한쪽에 문을 만들어 놓았다.

죽방렴을 이용한 고기잡이는 500년이 넘는다. 예종 원년(1496년)에 편찬된 '경상도 속찬 지리지' 남해현조편엔 '방전에서 석수어·홍어·문어가 산출된다'는 기록이 있다. 방전은 곧 죽방렴으로 그 전통은 경남 남해 지족해협에 이어지고 있다. 지족해협은 남해군을 만든 두 개의 큰 섬 창선도와 남해도가 가장 가까이 만나는 곳이다. 물길이 좁으니 물살은 빠를 수밖에 없고 죽방렴을 설치하기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창선대교에서 바라보면 부챗살 길이 80여미터의 죽방렴 20여개가 듬성듬성 박혀있다. 죽방렴을 이용한 고기잡이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이어진다. 멸치·갈치·학꽁치·장어·도다리·농어·감성돔·숭어·보리새우 등이 걸리지만 멸치가 가장 많이 잡힌다. 물이 흐르는 때를 보아 하루에 두어 차례 죽방렴 주인이 목선을 타고 들어가 뜰 채로 고기를 건져낸다. 죽방렴에서 잡은 멸치는 다른 멸치보다 서너배 값이 비싸다. 그물의 시달림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잡혀 신선도가 높아 횟감으로도 쓰인다. 겨울에는 말뚝은 그대로 두고 불통만 빼다가 말린다.

멸치 가공도 원시적인 방법을 그대로 쓴다. 가마솥에 멸치를 넣고 소금을 뿌려 삶은 뒤 바닷바람에 말린다. 지족해협에서 30년 넘게 죽방렴어업을 해왔다는 한 어부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근 하동·거제지역 연안과 전남 여수쪽에 죽방렴이 많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연안항로가 늘어나면서 선박운항에 지장을 줄뿐 아니라 소득이 신통치 않아 대부분 사라지고 지족해협에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죽방렴 한 통을 설치하는데 드는 통나무는 300여개나 된다. 11월쯤 통나무를 철거하고, 이듬해 이른봄 다시 말뚝을 설치한다. 인건비도 비싸고 인부도 구하기 힘들어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원시적 어업형태는 죽방렴 뿐만 아니라, 10여년전까지 서해안 안면도 해협에 '돌살'이 있었다. 돌살은 죽방렴처럼 조류가 흘러 들어오는 길목에 통나무대신 돌담을 부채살처럼 쌓는다. 돌담 입구에는 작은 나무울타리를 쳐 놓는다. 물살이 들어오면 울타리가 돌담 안으로 휩쓸렸다가 썰물 때 울타리가 닫히면 고기가 돌담 안에 갇히는 죽방렴 원리와 비슷하다. 돌살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죽방렴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조상의 지혜를 엿볼수 있다. 저녁 노을이 드리우면 홍차 빛 바다에 떠 있는 죽방렴은 한 폭의 그림이다.

죽방렴을 보려면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나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경부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를 거쳐 진교나들목이나 하동나들목으로 나가면 된다.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도 남해고속도로로 들어가 하동나들목으로 나간다. 거기서 19번 국도를 타고 남해대교를 지나면 남해읍 삼거리가 나온다. 다시 이동 쪽으로 방향을 잡아 7.7km가면 이동면이 나오고 삼동 지족, 창선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7.5km 가면 창선대교가 있는 지족해협에 닿는다. 대전∼진주간 고속 국도를 타고 진주나들목∼남해고속 국도 진교나들목∼1002번 지방도를 타고 남해대교를 건너 19번 국도를 타고 남해읍을 거쳐 갈 수도 있다.

통나무로 엮은 '바다 위의 평상'

#제주 테우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는 바다가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심술궂은 파도는 어부의 목숨을 앗아가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너른 바다 앞을 재어
한 길 두 길 들어가니
저승 길이 오락가락
떠다니는 칠성판아
이어 사는 명정포(銘旌布)야
못할 일이 요 일이네
모진 광풍 불지 말라

'제주민요'에는 칠성판을 타고 명정포를 덮고 다니는 것에 견주어 바닷일의 위험함을 노래했다. 제주도는 오래 전부터 해녀들이 물질로 해산물을 채취했고, 뗏목을 이용한 연안어업이 대부분이었다. 통나무 여럿을 연결하여만든 뗏목을 제주도에서는 '떼배' '테위' '테' '테우' 라고 한다.

10여년전 테우 취재를 위해 제주 어촌을 누빈적이 있다. 애월읍 신엄리, 서귀포 보목리, 하도 종달리 포구 등을 헤맸으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이제는 테우가 사라져 볼 수 없다"고 했지만 오기로 발 품을 팔은 결과 애월읍 구엄리 하동포구에서 분리하여 보관해 놓은 테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테우의 주인은 칠순의 어부로 30여년간 테우를 이용해 고기잡이를 해왔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테우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은 뒤 겨울철에는 해체하여 보관해둔다. 그래야 7∼8개월 동안 바닷물에 젖었던 뗏목이 건조되어 부력(浮力)이 좋아지고 항해속도가 빨라진다. 테우의 재료는 한라산 700∼800m 고지에서 자생하는 구상나무나 삼나무를 이용한다. 구상나무는 휘귀종이어서 한 때는 일본에서 삼나무를 수입하여 만들었다. 테우의 규모는 뱃머리 폭이 1.4∼1.8m, 뱃꼬리 폭이 1.7∼2.4m, 길이는 4∼5m이며 통나무 7∼11개를 엮어서 만든다.

테우를 이용한 어로행위는 크게 두 가지다. 밭농사에 쓸 거름이 귀했던 제주에서는 해초를 채취하여 거름으로 사용했다. 비료가 제대로 공급되기 이전까지 화산재가 대부분인 제주 농토에서 해초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해초 채취에 테우가 용이한 것은 뗏목 구조가 바다와 수평을 이뤄 작업이 손쉬울 뿐 아니라 많은 양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제주명물 자리돔을 잡는 데 가장 많이 이용됐다. 황금갈색을 띤 자리돔은 대부분 6∼7cm 정도의 작은 고기로 제주도에서는 '자리'라고 부른다. 보리 이삭이 패면서 알이 들고 5월 하순에서 8월 사이가 산란기여서 이 때가 가장 맛이 빼어나 제주의 여름식탁에 반드시 오르는 명물이다. 자리돔은 초된장에 미나리·마늘·고추 등을 양념해 물회를 만들어 먹거나, 회·구이·조림·젓갈로도 쓰인다. 서귀포시 보목동에는 해마다 '자리돔 큰 잔치'가 열린다.

작가이자 제주연구회장인 오성찬씨는 "테우는 한라산에서 베어 낸 삼나무를 통째로 물에 잘 뜨게 말려 물푸레나무 꿰미로 갈치를 꿰듯 꿰어 낸 바다위의 평상(平床)이다"고 정의한다. "테우는 높은 파도에 뒤집힐 염려가 없으며, 돛폭은 있으나마나 노 하나와 원시적 키만 있으면 넓은 바다를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얼마나 지혜로운 조선술(造船術)이냐"고 덧붙인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제주사람들은 거친 땅을 기름지게 할 해초를 한 배 가득 실어 뭍으로 옮겼고, 자리돔 잡이에 테우를 이용했다. 테우에는 섬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자연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담겨 있다. 제주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해온 테우는 통통배와 동력선에 밀려 이제는 제주민속촌이나 민속박물관에서나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 <산재의료관리원> 여름호 (2003.08)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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