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8월 30일 No. 84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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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난다

7월 하순에 장마가 끝났다는 기상청의 공식 발표를 조롱이나 하듯 한달 넘게 땅이 마를 만하면 장대비요, 가을의 문턱이란 8월23일 처서가 지났는데도 일주일 내내 호우에 천둥번개까지다.

온여름 꿉꿉하게 지내니 손발이 짜릿짜릿하며 마비 증세마저 온다. 이런 달갑잖은 현상은 기상청이나 하늘의 탓이 아니고 물론 환갑 가깝게 써먹어 유효기간이 다된 이 몸 탓이다. 고물의 특성 중 하나가 까탈이다. 전문가들이 애써 알려주는 일기예보마저 적당히 믿어 넘기지 못하고 꼬투리잡는다.

8월24일 남부지방의 강수확률이 30-60%다. 현대 과학 문명의 내로라 하는 걸작품인 슈퍼컴퓨터가 풀었다는 숫자 쳐 놓고는 묘상하다.

대중에게 알린 내용은 상식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 상식으로, 강수확률 50%는 비가 오는 경우와 안 오는 경우가 반반씩이다. 49% 이하는 비가 안 오는 쪽, 51% 이상은 비가 오는 쪽이다. 30-60%는 비가 올똥 말똥하다는 얘기다.

강수확률 30-60%식 일기예보라면 슈퍼컴퓨터 돌려 세금 많이 쓸 필요 없다. 이 고물에게 한달 인터넷 요금 3만9천원만 주면, 구름의 위성사진 보고 손발 짜릿짜릿한 것을 참고로 하여, 사람들이 맞네 틀리네 시비걸기 난처한 %를 기상청에 수시로 통보해 줄 수 있다.

사람들이 일기예보를 듣는 이유는, 비가 올 것인가 안 올 것인가 즉 강수확률 0%인가 아니면 100%인가를 알기 위해서다. 오기도 하고 안 오기도 한다는 어리삥삥한 얘기는, 일기예보를 듣는 사람이 거기에 맞춰 다시 일기를 예상하여야 되니 짜증만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도 일기예보는 틀릴 때 빼고는 언제나 맞는다. 아침 저녁 TV를 보면 리포터란 사람들이 나이 지긋해 보이는 이 남자 저 여자 아무나 붙잡고 ‘아버지’, ‘어머니’라 부른다. 그 남자나 여자가 그 리포터의 실제 아버지나 어머니가 될 확률은 1백만분의 1도 안 될 것이다. 실현이 불가능한 확률의 일을 51-100% 확실로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다. 그런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방송하고 TV수신료를 전기요금에 붙여 1대당 2500원씩 뜯어가는 것은 사기다.

말에 가장 신경써야만 할 그리고 말로 밥 먹고 사는 방송국 사람들이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사투리를 일반화시키는 등의 다른 방송 내용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원초적이며 기본적인 언어마저 혼란시키는 것을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 한다.

그들은 ‘하느님아버지’, ‘어버이수령’과 같이 부모 호칭의 의미가 변질되었다고 할지 모른다. 변질은 계속 이루어져 끝이 없다. 만약 리포터가 남자를 보고 ‘어머니’라 불렀다면 방송에 내보낼 수 있는가?

성경을 보면 바벨탑을 완성시키지 못한 이유가, 사람들에게 언어의 혼란이 왔기 때문이라 한다.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말이야 맞는 말인 것이, 탑 쌓기는 물론 모든 사회 활동이 언어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의 혼란은 성경 내용과 같이 종족이 달라 말 자체가 달랐을 경우에도 일어나지만, 같은 말일지라도 논리에 맞지 않는 내용의 말이 널리 사용되면 결과는 마찬가지다.

지금 TV에서 한국인이 한국말을 하여 한국인이 듣는 데 자막 처리를 하고 있다. 이거 바벨탑 시대의 재판 아닌가? 사실 이 고물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한마디 말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통령마저도 원고 없이 장시간 연설을 하거나 즉석 기자회견을 하여 30-60%의 일기예보식 언어를 난발한다고 본다. 이러니 의사 소통의 불완전으로 사회에 혼란이 일어난다. 혼란은 짜증을 부르고, 짜증은 폭력을 낳는다.

- 2003. 08. 27

홍 순 훈

아하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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