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8월 11일 No. 83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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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지에서 생긴 일

70대 가까워 보이는 노부부와 아들 며느리, 딸 사위 그리고 손자들로 구성된 10명 정도 가족의 해수욕장 나들이는 낯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흐뭇한 광경이었다. 장인과 사위, 늙은 아버지와 장년의 아들이 어린애들처럼 물장난하는 것은 마치 한편의 동화 같았다. 딸과 며느리 손자들이 백사장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웃으며 이들과 장단을 맞추는 것 또한 부럽기 그지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시쳇말로 그리 세련되어 보이는 이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 분위기를 풍겼다. 그럼에도 저리 화기애애하고 사랑 넘치는 순박한 가족이 있다니...

주위 피서객들의 이같은 환상이 와장창 깨지고 그 가족에 대한 칭찬이 비웃음과 분노로 바뀌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영금지구역 가까이서 허우적대는 사위를 보고 수상안전요원들이 계속 경고를 해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침내 파도에 휩씁린 사위를 안전요원 한 명이 뛰어 들어 꺼내며 안전지역으로 가라고 타일렀다.

가슴을 조이던 피서객들이 안도의 숨을 내리쉬는 것과 달리 노인과 아들은 별반 놀라는 기색도 없이 약간 주춤거리더니 다시 물놀이를 즐겼다. 고쳐 보니 그들은 이상해도 보통 이상한 가족이 아니었다. 밖에 있는 딸 며느리 손자들이 같이 낄낄대는 것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었다.

안전요원이 다시 쫓아와서 술 마시고 수영하면 안되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고 목소리를 높이자 피서객들은 그 가족의 앞뒤 사정을 알게 되었다. 40살 가량의 아들과 사위가 낯술에 상당히 취해 물에 들어가는 것을 말리기는커녕 역시 한잔하고 같이 물에서 노는 노인이 얼마나 주착이냐고 사람들은 비난하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남자 어른 셋이 무슨 참사를 당할지 모를 음주수영을 말리지는 않고 낄낄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딸은 또 뭐하는 인간들이냐는 비난이 당연히 잇따랐다. 알다가도 모를 가족이었다. 물론 노인이나 여자들이 사위와 아들을 말리기는 했으나 형식에 불과했다. 안전요원이 와서 야단을 치면 잠시 물밖에 나가 있다가 또 뛰어 들어가는 사위를 보면서 그들은 계속 낄낄거렸다. 애타는 것은 안전요원 뿐이었다.

한 술 더떠 그들은 안전요원들을 놀리면서 즐거워하기까지 했다. 해수욕장 문닫을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피서객 대부분이 물에서 나왔으나 그들은 끝까지 노닥거리다가 안전요원한테 튜브를 압수당하고 나서야 나왔다. 거의 1시간 반 동안 그렇게 안전요원 속을 썩이고 난 그들의 말이 걸작이었다. ‘당신들이 경찰은 아니지 않느냐’(자원봉사자들이었다) ‘그래도 아무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이렇게 끝나지 않았느냐’하며 낄낄댔다.

그리 많지도 않은 안전요원들이 자기들만 주목하느라 충분한 활동을 못하고, 그게 자칫하면 다른 사고 예방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 같은 것은 아예 없는 이들이었다. 자신들의 음주수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끼친 불쾌감이나 피해 같은 것도 고려할 능력이 전혀 없는 비정상 가족이었다.

피서객들이 해수욕장을 빠져 나가고 있는데 그들은 해변에 친 텐트 밑에서 또 한잔 하고 있었다. 해변에서 야영을 하고 일가족이 즐기는 것은 누구도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까지 들어와서는 안 될 승용차들을 바로 그 옆에 주차시켜 놓고 태연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더니 하는 짓마다 그런 식이었다.

동화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이던 한 가족이 그렇게 추하고 무지해 보일 수가 없었다. 관계자들 말에 따르면 피서지에서 음주수영으로 속 썩이는 이들이 그 가족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위험과 피서지 질서 문란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 개탄스런 현상이 아닐 수 없다.

- 담배인삼신문 8월8일(20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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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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