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8월 9일 No. 829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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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섭의 세상 엿보기(21)
청소년증

지금은 한국언론사의 유물이 됐지만, 정부에서 기자에게 ‘보도증’을 만들어 주던 시대가 있었다. 이른바 ‘프레스카드’다. 기자들의 소속은 신문․방송․통신사지만 기자 자격과 심사는 정부에서 한 꼴이니 뻔한 ‘꼼 수’가 아닌가. 명분이야 그럴듯하다. 사이비 기자로 인한 피해를 막고 기자들의 취재편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레스카드제는 국가가 기자의 자격을 심사․허가하고, 기자의 동태에 관한 제반사항을 파악하기 위한 장치다. 이는 파시즘체제에서나 가능했던 언론과 기자의 통제 방식이다. 반정부적인 언론사를 문닫게 하고, 체제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를 솎아 내겠다는 속셈이다. 프레스카드 유효기간을 1년으로 정해, 언론사는 해마다 정부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얼마나 절묘한 언론통제방식인가.

서슬 푸른 유신헌법이 발효되던 1972년 프레스카드제가 시행됐고, 정부의 ‘꼼수’는 마각을 드러냈다. 시행 3개월만에 프레스카드를 발급 받은 기자수는 4184명으로 2287명이 도태됐다. 이후, 지방주재 기자들이 집단해고를 당했고, 기자해고 사건이 경향 각지에서 속속 발생했다. 3년 뒤인 1975년 문공부가 배포한 ‘보도증 소지자 명단’에는 다시 2997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동안 신문․통신사 5곳이 문을 닫기도 했다.

정부에서 발행한 신분증이었으니 알량한 ‘권위’는 있었다고나 할까. 야근을 하거나 술자리에서 늦어져 통행금지에 걸려도 “나 기자요”하고 프레스카드를 슬쩍 꺼냈다 넣으면 무사통과가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신분증은 자신을 드러내는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기관원’임을 과시하는 정보기관 신분증에서부터 공무원신분증 등은 말 그대로 신분을 과시하는 휴대용 증명서다.

서울시는 최근 대중교통이나 문화시설 이용 때 학생이 받는 할인혜택을 ‘비(非)학생’도 받을 수 있도록 ‘청소년증’을 발급해 주기로 했다니 모처럼 흐뭇한 소식이다. 서울시 청소년 인구 77만4900여명 중 약 4.6%에 해당하는 3만5500여명이 9월부터 시내버스 할인혜택을 받게 됐다.

그동안 비학생 청소년들은 학생층보다 상대적으로 불우한 처지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중교통과 영화, 공연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청소년 할인제도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철웅성처럼 높은 학벌의 벽 앞에서 그들이 겪어야 할 좌절과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신분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어렵다. 이런 차별을 견디다 못해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학생이든 비학생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아야 공동체적 문화사회다. 문화관광부도 이들 비학생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니 300만명에 이르는 전국의 비학생들이 골고루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담배인삼신문 2003.08.08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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