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28 칼럼니스트 2003년 8월 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구독신청/해지 | columnist.org |
아기 장수의 날개

‘아기 장수 전설’은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한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비범하다. 아이 겨드랑이에 작은 날개(또는 비늘)가 돋는다. 아이는 힘이 무척 세다든가 여느 사람보다 능력이 특출하다. 부모는 아이의 능력을 관가에서 알면 역적이 났다고 삼족을 멸할까봐 겁낸다. 날개를 잘라버린다. 그 뒤의 결말은 다양하다. 용마가 나타나 아이를 태워 하늘로 올라가기도 하고, 천지가 진동하면서 아이도 부모도 집도 사라지고 샘이나 바위가 생기기도 한다.

구전 설화에는 지나간 시대의 민초가 지니던 의식이 묻어 있다. 이 이야기에서 보는 것은 특출한 아들을 둔 부모의 공포심이다. 전제군주가 언제나 두려워한 것은 반역이었다. 역심을 품으면 참혹하게 벌했다. 공포심을 심어 감히 보위를 넘보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비범한 인물은 반란 수괴가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런 인물의 출현은 위험했다. 왕의 씨가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왕이 잘 알았다. 긴 역사를 볼 때 역성혁명(왕조의 성씨가 바뀌는 혁명)이 드문 일은 아니어서, 역성혁명으로 새 왕조를 이룬 가문은 또 다른 역성혁명이 일어날까봐 전전긍긍했다.

지금은 전제군주 시대도 아니고, 아이의 특출한 재능을 숨기거나 꺾어야 할 시대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재능의 ‘날개’가 보이면 더 잘 키워야 하는 시대다. 그런데, 그 싹을 알아채지 못하고 잠재워 버리는 수가 있다. 또 다른 경우는, ‘날개’가 있는데도 그것이 부모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여 누르거나 자르는 것이다. 앞쪽은 부모의 무관심, 뒤쪽은 부모의 빗나간 관심의 결과다. 교육정책이나 제도가 잘못되어서 ‘날개’가 방치될 수도 있다.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대성한 인물들이 많은데, 국내에 있었으면 그리 됐겠느냐는 물음이 나온다.

아마 더 심각한 것은, 자기 자식에게 ‘날개’가 없는데도 있다고 착각하는 부모들이 많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엄청난 교육비를 퍼부으며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운다. 결과는 경제적 낭비고, 아이의 고통이고, 부모의 실망이다. 부모의 과잉 기대에 짓눌린 아이가 빗나간 길로 가기까지 한다. 이렇게 된 뒤에는 후회해 봐야 돌이킬 수 없다.

아이는 ‘날개’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기를 일이다. 다만, ‘날개’를 발견하는 노력은 부모와 학교가 다함께 해야 함이 마땅하다. 발견된 ‘날개’가 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유익한 쪽이라면, 잘 자라게 해야 할 것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 청소년상담소식 8월호 (청소년상담원 발행 2003.08)


-----
박강문
칼럼니스트, 대진대학교 통일대학원 초빙교수
http://columnist.org/parkk

http://columnist.org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를 평가해 주십시오.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