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8월 6일 No. 827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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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의 하늘과 땅에서 / 8월 6일


梁平의 '그 해 오늘은'
프레시안 2003-08-06


  1945년 오늘 아침 8시 10분경 히로시마의 초등학교 1학년인 나카자와 게이지(中澤啓治)는 학교를 가고 있었다. 그 때 1-2㎞ 떨어진 상공에서 굉음이 들린 정황은 잘 알려져 있다. 미공군의 B-29 폭격기가 ‘리틀 보이’(꼬마)라는 원폭을 투하한 것이다.
  
  그래서 집으로 온 나카자와는 불이 난 채 무너진 집안에서 아버지와 남매들이 죽어 가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보았다. 살아남은 어머니도 몇 년 뒤 원자병에 걸려 7년 간 투병 끝에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나 시신을 화장하면서 그는 또 한번 놀란다. 어머니의 뼈가 녹듯이 거의 없어서였다. 학교를 가던 중이던 그는 피해가 가장 적었던지 64세가 된 지금까지 살고 있으나 그 후유증으로 당뇨병을 앓는 데다 최근 들어 부쩍 나빠졌다는 소문이다.
  
  그런 건강과 상관없이 나카가와는 히로시마의 폐허 속에서 피어난 꽃이다. 그가 73년부터 87년까지 자신의 체험을 통해 반전과 반핵을 주제로 그린 만화 ‘맨발의 겐'이 전세계에서 5천만 권이 팔린 슈퍼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그래서 벌어들인 수입은 히로시마의 피해는커녕 자기 가족 한 사람의 피해도 보상할 수 없으나 그 만화는 전 세계에 반핵과 반전이라는 신의 음성을 쉽고 재미있게 전하는 어린이 성경 같이 됐다.
  
  그것이 성경 같다고 한 것은 만화로 재미있게 그려서 만은 아니다. 나치도 유능한 만화가들을 많이 동원했으나 그들은 반전이 아니라 참전에 앞장서지 않았던가. 나카자와는 원폭 피해자의 입장은 물론 일본인의 입장을 떠나 원폭과 전쟁을 고발했기에 그 만화는 모든 인류에게 경전 같은 울림을 갖는 것이다.
  
  나카자와의 그런 시각은 혈통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도 반전운동가여서 ‘비국민’으로 매도당한 것은 물론 히로시마 구치소에 1년 6개월이나 투옥된 적이 있다. 조선인을 차별하지 않고 친한 것도 내림이어서 나카자와는 어렸을 적 박중찬이라는 또래의 조선인과 친해 그의 만화에는 ‘조선인 박씨’가 등장한다.
  
  따라서 원폭이 그런 사상범들을 가두었던 히로시마 구치소를 파괴시킨 것은 잘 된 일인지 모르나 나카자와의 아버지 같은 반전론자까지 죽인 것은 비극이었다. 보다 아쉬운 것은 원폭이 일본인들의 민족차별이나 군국주의 기질을 파괴시키지 못한 점이다. 그래서 일본이 원폭 피해국이라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을 조성할 때도 2558명의 한국인 사망자를 위한 위령탑은 공원밖에 세우기도 했다. 실은 일본도 원폭을 만들려 했다는 주장이 나돌고 있으니 원폭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런 모습은 이날 원폭을 투하한 B-29의 부조종사 로버트 루이스가 아래의 버섯구름을 보고 “하느님, 우리는 무슨 짓을 저질렀습니까?”하고 절규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훗날 ‘맨발의 겐'으로 유명해진 나카자와가 미국을 방문하자 많은 미국인들이 그를 환영하면서 “미국 정부가 나빴다”느니 “그것을 알았더라면 우리가 막았을 것”이라고 했고 그것은 공치사가 아니다. 최근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많은 미국시민들이 반전데모를 벌인 것도 그런 것이다.
  
  한마디로 동서를 막론하고, 그리고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배타적인 호전파와 코스모폴리탄적이 반전파는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군수산업자본가를 비롯한 호전파가 더 조직적이고 힘이 센 점이다. 그래서 미국시민들이 반전데모를 해도 많은 미국 청년들은 히로시마가 아닌 이라크 사막에서 또 한번 “하느님, 우리는 무슨 짓을 저질렀습니까”하고 절규하면서도 사람을 죽이고 또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

양 평/언론인    http://columnist.org/yang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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