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8월 5일 No. 82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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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것과 쉬는 것

"휴가비 대주면 동침" "2박 3일에 50만원" 등 휴가비와 섹스를 맞거래하자는 이메일이나 채팅이 성행이라고 한다. 일부의 극단적 사례라고는 하지만 휴가의 부작용과 병폐가 이 정도에 이르렀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높다.

휴가는 문자 그대로 생업이나 일상의 테두리에서 잠시 짬을 내어 쉬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터에서의 긴장과 스트레스, 푹푹 찌는 삼복더위를 견디어 내기가 쉽지 않다.

다람쥐 체바퀴 같은 나날을 잠시 접고 쉬는데 마음에 맞는 이성이 함께 한다면 그거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돈 거래를 통해 이성을 구하는 것은 그리 남는 장사가 될 것 같지 않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동안 소비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필요한 활력을 얻으면 다행이지만 그런 관계치고 바람직하게 끝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자칫하면 한심한 사태를 당해 참담하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을 구별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평소에 일을 열심히 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열심히 일해 본 사람만이 쉬는 맛을 제대로 알고, 땡볕에서 장시간 활동한 사람만이 그늘의 고마움을 아는 법이다. 산을 오르면서 중간 중간 쉬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잠시 앉아서 물을 마시거나 하늘을 쳐다 보고, 부근의 초목과 바위 등에 새삼스러운 시선을 던졌을 때의 신선한 낯설음과 청량감 등을.

휴가란 그런 것이다. 쉼터에서 그렇게 자신을 추스르고 난 뒤 새로운 기운과 다짐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휴가랍시고 돈 퍼부어가며 흥청망청하는 것은 산을 오르다 중간에서 본래 목표를 잊어먹고 나가 떨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산에 오르지도 않고 입구에서부터 부어라 마셔라 하며 퍼지는 사람들도 비슷하다. 남이 장에 가니 무릎에 망건 씌우고 따라 나서는 격이다.

무턱대고 돈을 퍼붓는 일부 여유층의 휴가 못지 않게 딱한 것은 빚까지 얻어다 휴가라고 나서는 사람들이다. 어느 단체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 일거리를 제공하는데 그 중 일부는 며칠 일해서 한 동안 먹을 것이 생기면 아무 말없이 작업장에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들일수록 여름철이면 돈을 꾸어서라도 반드시 휴가를 나선다며 관계자들은 안타까워 하고 있다. 삶의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어느 노점상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면 더 기가 막힌다. 아쉬운대로 일자리가 있음에도 열심히 하지 않고 큰 소리만 치다가 휴가철이면 국내외 여행을 밥먹듯 하고 다니더니 나중에 경찰서나 교도소에 가 있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는 것이다.

휴가의 참뜻을 모르는 이들이 빚어내는 안타까운 모습들이다. 일과 휴식 그리고 노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휴가는 그런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다.

- 국토연구원 월간 '국토' 8월호 (20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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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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