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7월 28일 No. 82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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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熱月’에 식은 혁명 / 7월 28일


梁平의 '그 해 오늘은'
프레시안 2003-07-28


  한 사람이 선과 악을 표상하는 두 이름과 함께 두 얼굴을 가질 수 있다. 소설 속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그렇다. 그리고 한 이름에 선과 악의 두 얼굴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1794년 오늘 단두대에서 사라진 로베스피에르가 그렇다.
  
  물론 호평과 악평이 교차하는 것이 그만은 아니다. 나폴레옹은 ‘영웅’이자 ‘폭군’이었다. 잔인한 독재자 스탈린도 요즘 러시아에서 독일침략을 막아낸 구국의 영웅으로 인기가 오르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로베스피에르’라는 이름에 내포된 선과 악, 명과 암의 콘트라스트에는 이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름은 피비린내를 풍긴다. 그가 죽기 전 1년여 동안 처형당한 사람은 2만이라고도 하고 4만이라고도 하니 자칫 ‘로베스피에르’가 ‘기요틴’(단두대)과 혼동될 판이다. 따지고 보면 ‘기요틴’(Guillotine)도 단두대를 발명한 의사 이름 '기요탱'(Guillotin)에서 온 것 아닌가. 그것을 발명자가 아니라 가장 애용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로베스피에르’라고 불러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많은 사람에게는 ‘로베스피에르’가 순결 공정 겸손 검소 등 프랑스 혁명의 양심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말년의 공포정치에 이르기 전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덕목이 추가된다. ‘온화’-. 그리고 유태인이나 흑인 노예 등 억압당하는 이들에게 그의 이름은 ‘자비’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었다.
  
  그런 로베스피에르가 보수적인 혁명동지들의 음모로 27일 권력을 뺏긴 채 갇혔다가 다음날엔 자신이 기요틴 신세를 지게 됐으니 ‘애석’과 ‘환호가 또 한번 콘트라스트를 이루었으나 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짙은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이들은 많아도 그를 몰락시킨 ‘테르미도르 반동’을 좋아하는 이들은 드물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로베스피에르의 종말로 그치지 않고 프랑스 혁명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어서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력으로 ‘열월’(熱月)이나 ‘열기의 달’을 뜻하는 테르미도르는 왠지 ‘싸늘한 달’로 길이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력이 사라진 뒤에도, 그리고 서양이 아닌 동양에서도 ‘테르미도르’가 찾아 오곤 한다. 최근 정부가 보수로 회귀하며 개혁이 뒤뚱거리자 진보적인 학자들이 ‘참여정부 테르미도르’라며 걱정을 하는 것도 그렇다.
  
  그와 반대로 보수주의자들도 곧잘 테르미도르를 써먹는다. 로베스피에르가 너무 이상주의적인 혁명을 하려다 당통 같은 동료들마저 죽이더니 스스로 몰락했으니 혁명이나 개혁을 하더라도 너무 급진적이거나 이상주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강한 자로부터 부당한 권익을 뺏어 약한 자에게 주어야 하는 혁명이나 개혁이 그처럼 안전하고 편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바로 로베스피에르의 생애가 말해주고 있다. 그의 혁명동지 당통마저 부패하는 등 혁명은 어렵기에 진정한 혁명가는 어쩔 수 없이 고독하고 그러다 보니 겸손하고 온화한 그가 공포정치의 대명사가 되고만 것이다.
  
  그는 끝내 부패한 동지들에게 포위된 채 몰락하긴 했으나 봉건영주들의 토지를 농민에게 나누어 준 것은 그의 이상주의만이 이룰 수 있는 업적이었다. 그래선지 로베스피에르라는 이름이 없는 프랑스 혁명은 아무리 상상력을 굴려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양 평/언론인    http://columnist.org/yang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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