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7월 26일 No. 819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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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위한 아다지오

‘짐승 같은’ 어느 선배가 있다. 그는 지금까지 직장을 다니는 기간보다 백수로 지내는 때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백수인 때는 몇 날 몇 달이고 지리산, 설악산 등에서 묻혀 지내고 심지어 직장 다닐 때도 툭하면 산에 가서 한참씩 있다 오곤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시내에서 한 잔 하기 위해 만나면 영락없는 짐승이다. 사람 사는 곳에 잘못 내려와 길을 잃고 헤매는 짐승 바로 그대로다. 숲 속의 검푸른 녹색과 진한 수액이 금방이라도 묻어 나올 듯한 싱싱함이 그렇고, 투박하고 거칠면서도 순진한 모습이 그렇다. 남보다 큰 덩치와 60대 초입에 들어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맑고 강렬한 눈빛이 얼른 보면 부조화의 냄새를 풍기지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자연스러움이 배어난다. 산과 숲의 힘이 그의 영혼과 얼굴을 그리 푸르게 만든 것이다.

그 선배를 만날 때마다 나도 질척거리는 현실에서 그렇게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지만 그게 아무나 꿈꿀 수 없는 소망이라는 아쉬움만 곧 재확인하고 만다. 열패감(劣敗感)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털어 내지 못하는 허기와 갈증을 안고 먼 기억 속의 숲을 헤맨다.


나의 생가(生家)를 둘러선
밤나무 숲속에서
가슴 조이던 유년시대(幼年時代)

내 사랑의 싹이 움트고
내 지혜의 은도(銀刀)가 빛나던
밤나무 숲속,
새들의 노래는 퍼져가고
노을 속에 물드는 강물의 꿈은
멀리 멀리 요단강으로 흘러가듯
그때 발성(發聲)하던 내 목소리를
이제 누가 기억(記憶)하고 있으랴

          (박이도 '회상의 숲' 중에서)


이 시에서처럼 어린 시절 숲이나 풀밭에서 꿈을 조심스레 쓰다듬어보지 않았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이제는 자기 혼자만의 지극한 추억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야비한 현실과 가혹한 세월이 어린 날의 숲과 꿈을 거세하거나 그들의 희망을 철저히 무력화시켜버린 것이다. 아니 세월과 현실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 그렇게 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숲은 언제나 같은 곳에서 고향의 노부모들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시인이 암시했듯이 나무는 신이 지은 시다. 숲은 그래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들을 신이 묶어 펴낸 시집이다. 옆에서 나무들을 지키며 함께하는 바위와 새, 산짐승들은 침묵과 그들 특유의 숨소리, 그리고 내밀한 속삭임으로 화음을 맞춘다.

그런 숲 속에서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신의 마음과 노래를 읽고 듣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풍요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혼자라면 더욱 아늑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나무는 또 인간의 어리석음과 갖가지 고통을 쓰다듬어 주고, 지혜로 해결의 방향을 암시하는 현인(賢人)이다. 숲은 그런 현인들이 모인 집현전(集賢殿)이다. 그들은 어떤 고난과 영광 앞에서도 떠들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세를 유지하며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강렬한 햇빛마저도 이곳에서는 매우 조심스럽다.

숲은 어리석은 우리들이 방치한 어린 시절의 꿈과 기억들을 밀봉해 놓고 기다린다. 삶에 찌들고, 희망과 꿈이 고갈된 인간에게 여유와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제는 퇴색하고 남루해진 자신에게 그때의 꿈과 희망은 오히려 상처와 고통이 되어버린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숲의 본뜻이 아니다. 돌아온 탕아를 껴안는 아버지처럼 숲은 언제나 큰 가슴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그리고 지난날의 꿈과 희망이 이제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준다.

숲속에서 크고 작은 나무들을 자세히 읽고 음미해 보라. 꿈은 허황되고 부질없으며 공상은 헛된 희망이라고들 말하는데 숲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들에게 어떤 꿈을 꾸어도 좋다 하고, 상상의 날개를 아무리 펴도 번거롭다 하지 않는다.

이제는 남루해진 꿈과 공상 속에 강도 높게 농축된 에너지와 희망을 숲은 추출해 낸다. 피로와 때로 찌든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그걸로 세척해주며 자유를 숨쉬게 하는 것이다. 또 현실로 복귀하는데 필요한 통로를 에너지와 생기로 재포장하고, 이정표를 정비해 우리들의 새로운 다짐과 재출발에 힘을 실어준다.

그 짐승 같은 선배처럼 멀고 깊은 산의 숲에 갈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꼭 고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신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만 숲 아니면 몇 그루 나무 아래라도 자주 가서 그들과 시선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다. 그리고 천천히 여유있게 눈을 들어 나무들을 읽고 음미하면 아쉬운대로 낡고 때묻은 일상을 헹구어낼 수 있다. 나아가 현실에 엉겨 붙어 허우적대는 우리들의 열패감도 조금은 씻겨나갈 것이다.

- 동화기업 사보 7/8월호(20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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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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