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7월 22일 No. 81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 |
한국의 기괴한 인터넷 세상

영국의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이 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라는 제목의 동화가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어린 친구 앨리스와 앨리스의 자매 로리나, 이디스와 함께 강에 나가 놀던 중 소녀들이 졸라대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글로 적은 것이다. 내용은 앨리스라는 소녀가 꿈속에서 토끼굴에 떨어져 이상한 나라로 여행하면서 겪는 신기한 일들을 그린 동화이다.

루이스 캐럴은 어린이를 어른에게 부속된 존재로 여기지 않고 독립된 존재로 인정했다. 풍부하고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인 이상한 나라는 어린이의 내면에 존재하는 새로운 세상이다. 그는 어린이들이 그 새로운 세상에서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쳐 또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이 보다 2백20여년 전인 1726년에 영국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 가 지은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도 이상한 나라에 관한 얘기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은 주인공 걸리버가 항해 중에 난파하여 소인국, 대인국, 하늘을 나는 섬나라, 말(馬)나라 등으로 표류해 다니면서 기이한 경험을 한다는 줄거리이다.

소설의 주요 테마는 선과 악을 동시에 보이는 인간의 이중적 본질에 대한 풍자이다. 저자는 정직하고 성실한 의사 걸리버가 이상한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겪은 그 나라의 정치와 풍습, 생활방식 등 인간 내면의 사악함과 정치의 부조리를 과장하지 않고 차분하게 보고서 형식의 문체로 소설을 전개시켰다.

「걸리버 여행기」는 출간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많은 문학작품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웹사이트 「야후(Yahoo)」는 이 책 제4부에 등장하는 인류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야후를 말하며,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는 제3부 「하늘을 나는 섬나라 라퓨타」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위에서 말한 소설책에서 나오는 이상한 나라들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만든 상상의 나라이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는 진짜로 이상한 나라도 있다. 우선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정권을 세습한 가운데 2천3백만 동포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이 있고 2001년 3월 바미안의 세계 최대 석불을 파괴시킨 아프가니스탄, 1959년 2월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독재정권을 세워 총리가 된 카스트로가 45년간 가까이 1인독재를 하고 있는 쿠바, 지난 4월 미국의 침공으로 무소불위의 후세인정권이 무너진 이라크 등을 들 수 있다.

북한의 경우는 얼마나 이상한 나라이기에 지난 15일 프랑스 좌파신문인 리베라시옹이 바캉스 특집면에서 북한과 관련한 19개 문항의 퀴즈를 실어 관심을 끌었다. 삼지선다형 문항 중에는 "북한에 김일성 동상이 몇개나 있을까?"(3만5천개), "김일성이 태어난 날 무슨 일이 있었나?"(타이태닉호 침몰), "김정일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13일의 금요일), "1987년 김일성의 생일 선물로 기관총을 선물한 사람은?"(야루젤스키 당시 폴란드 대통령, 스탈린은 과거 장갑차를 선물했다는 설명과 함께) 등 독자들이 실소를 자아낼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 퀴즈의 정답을 알게된 프랑스 독자들은 더위도 잠깐 잊은 채 즐거워했겠지만 필자로서는 씁쓸한 기분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북한이라는 나라는 「이상한 나라」이며, 그러한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이나 통치를 받는 사람 또한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서글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경제전문 격주간지인 포브스 최신호가 지난 14일 인터넷 열풍에 휩싸인 한국에 관한 기사를 실어 관심을 끌었다. 「한국의 기괴한 인터넷 세상(Korea's Weird Wired World)」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포브스는 "한국에서는 나라 전체가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연결돼 기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브스의 보도대로 인구 4천8백만명(통계청 발표로는 7월1일 현재 4천7백93만명)인 조그만 나라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 즉 네티즌의 수가 무려 2천7백만명(56%)에 이르고 있으니 우선 그 자체가 기괴한(?) 일이고, 현실세계에서의 온갖 일들이 인터넷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으니 그 또한 이상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포브스는 "인구 4천6백만명인 이 나라는 단시간에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나라가 됐다"면서 "정치, 오락, 섹스, 매스미디어, 범죄, 상업이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서 재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잡지는 이어 "배우자들이 화상채팅으로 서로 불륜을 저지르면서 결혼생활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으며, 온라인중독 환자들이 정신과 의사들에게 몰려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오전 11시까지 출구조사 결과 노무현 후보가 뒤지고 있었으나, 그의 지지자들이 온라인채팅으로 이 사실을 알리고 지지를 촉구한 결과 젊은 층이 대거 투표장으로 몰려가 오후 2시에는 노후보가 선두에 나서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쓰기도 했다.

한국의 이 같은 상황은 고속도로가 처음 지어지고 분명한 규정과 규범이 없어 교통사고 사망률이 치솟았던 현상과 비슷하다고 이 잡지는 분석했다. 또 어느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해 전체 인구의 약 10%, 13세에서 18세까지 청소년들의 약 40%가 인터넷에 중독돼 있다고 보도했다.

포브스의 보도대로 오프라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의 모든 일들이 지금 온라인에서 재형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의 신문사회면 기사를 보면 정보통신이나 인터넷 등과 관련한 사건·사고는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라는 구절이 자주 나타난다. 이는 오프라인에서의 일이 온라인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계속적으로 재형성되고 있음을 말한다.

최근의 신문만 봐도 얼마든지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며칠 전에는 휴대전화를 이용, 전자화폐를 여러 차례에 걸쳐 세탁하는 수법으로 수억원대의 신종 카드깡을 일삼은 일당 3명이 검찰에 적발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던 불법적인 카드깡이 철퇴를 맞자 온라인에서 이 같은 수법이 등장한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는 사이버사기사건,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끼리의 동반자살이 신문지면을 장식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끼리 사이버상에서의 동거생활을 하거나 결혼식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사이버상에서만 쓸 수 있는 사이버머니는 실제 화폐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니면서 금융사기 등 온갖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말이지 이 세상에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온라인상에서 재현되고 이것이 다시 오프라인에서 되풀이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포브스의 보도내용은 인터넷과 관련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등 2가지 시각에서 다루고 있지만, 아무래도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조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사실 지금과 같이 인터넷상에서 온갖 나쁜 일들이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위험한 요소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부정적인 현상을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얼마가지 않아 한국은「기괴한 인터넷 세상」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망하는 이상한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 2003.07

--------------
이재일
http://columnist.org/netporter/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

http://columnist.org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