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7월13일 No. 806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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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물로 보지 말라

과거 어느 대통령을 '물XX'로 부른 적이 있었다. 야무지게 맺고 끊는 것이 없다는 야유가 다분한 별명이었다. 그러나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 물로서는 그런 대접에 펄쩍 뛸 노릇이었다.

인간의 몸은 70∼80%가 물이다. 조직 별로 보면 뇌와 심장은 75%가 물이며 폐와 간의 86%, 혈액과 신장의 83%, 근육의 75%가 물로 되어 있다. 인간 자체가 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물XX'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물길동' '물춘향' '물철수' 등 물남물녀(물男물女)가 아닐 수 없다.

한 마디로 물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나 인간은 물 없으면 살 수 없다. 우리가 마신 물은 입, 위, 장, 간장, 심장, 혈액, 세포, 혈액, 신장, 배설의 순서로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생명을 유지해 준다.

그 과정에서 혈액과 조직액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영양소를 용해, 흡수, 운반하여 세포에 공급한다. 그리고 체내의 불필요한 노폐물을 체외로 배설시킨다. 또 체내의 열을 발산시켜 체온을 조절하는 등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기능들을 해낸다.

한번 신체에 들어간 물이 소변, 땀 등의 형태로 배설되어 나갈 때까지 그런 역할들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가 건강의 척도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물XX' 전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을 철저히 보장해 준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역설이 나올 만 하다.

물을 1∼2%만 잃어도 심한 갈증과 괴로움을 느끼고, 5% 정도 잃으면 반 혼수상태에 빠진다. 12%를 잃으면 생명을 잃는다. 단식을 하면 4∼6주정도 생존이 가능하지만 물을 마시지 않으면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체내 독소를 배출시키지 못하며 그 때문에 자가중독을 일으켜 1주일 이내에 죽는다.

나라를 잃고 여기저기 떠돌면서도 지혜와 끈질긴 생명력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상술에 '78대 22'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즉 무슨 일이든지 성공률 78%, 실패율 22%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부분이 실패율 즉 22%에 해당하고 78%는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를 우주의 대법칙이라고 한다. 면적 100인 정사각형에 내접하는 원의 면적과 나머지 부분이 78대 22이고, 공기 중의 질소와 비질소(산소 포함)가 78대 22인데 이것들이 대법칙에 속한다. 그들은 사람의 몸체도 수분과 비수분이 78대 22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어떤 일을 할 때 최선을 다 하되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라는 판단이 서면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노력과 체념을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노력과 우주의 질서를 적극적, 긍정적으로 결합시켜 삶을 영위해 나간다는 그들다운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유대인들이 인체의 수분 비율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는 물의 속성에 큰 비중을 두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왔다. 노자(老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자연 만물 가운데 물이 최상의 선(善)이므로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웬만한 장애물은 그대로 넘어 가지만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바위나 산이 나타나면 우기지 않고 양보하며 돌아간다. 그리고 항시 낮은 곳에 머무르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주위를 정화시켜 준다.

인간이 물의 이러한 특징을 본받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 어디에도 전쟁, 갈등, 반목이 있을 리 없다. 물의 본성은 이처럼 인간의 스승으로서 최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물질적 특성은 모든 생물의 근원으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물을 낭비하고 오염시켜가며 우리 스스로를 위협하고 있다. 코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개발, 골프장 건설 등 각종 미명 하에 산을 깎아 내고 숲을 훼손, 물을 오염시키고 물난리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논을 비롯한 농지의 급격한 축소도 수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가로막는다.

수돗물을 놔두고 생수를 사 마셔야 하는 근본 원인이 바로 우리들에게 있다. 물의 본성이 제시하는 남에 대한 배려는커녕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어리석음을 주저 없이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가 석유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이 분쟁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지의 관련 국가들 사이에 이미 물로 인한 긴장과 갈등은 시작되었다.

우리 역시 벌써 유엔이 물 부족가능 국가로 지목했으나 이를 절감하는 시민은 그리 많지 않다. 1인당 하루 평균 물 사용량은 395리터로 세계 최고 수준급이며 물값은 다른 나라의 1/3∼1/6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물을 너무 헤프게 쓴다. 물론 절약을 위해 물값을 무턱대고 올려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너무 싼 물값이 물을 '물쓰듯'하게 만드는 요인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맑고 깨끗한 물은 생명의 필수요소이자 인간의 권리이다. 그러나 모든 권리가 그렇듯이 거기에는 반드시 상응하는 의무가 따른다. 물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민에게 신선한 물을 제공해야 하고 소비자들은 이를 위한 공동노력과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을 물로 보고 물 쓰듯' 하는 오늘의 풍조를 크게 바꾸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 사외보 'SK' 7월호 (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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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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