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7월 12일 No. 80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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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가 만난 영화제 사람들(5)>
부부는 같이 다닌다
(老, 壯부부의 격전지-후쿠오카 영화제)

일본의 후쿠오카(福岡)시에는 두 개의 영화제가 있다. 그 하나는 <후쿠오카 아시아 영화제>. 1987년 마에다 부부가 만든 이 영화제는 올해 17회를 맞는다. 다른 하나는 이보다 4년 뒤에 후쿠오카 시가 창설한 <아시아 포커스 후쿠오카 영화제>.

1991년 후쿠오카 시에서는 시립도서관을 건립하고 그 안에 두 개의 극장과 현대식 필름저장시설을 구비한 시네마테크를 조성하면서 국제영화제를 창설했다. 시 정부에서는 당시 <후쿠오카 아시아영화제>를 운영하고 있던 슈 마에다에게 영화제 창설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으나 실현되지 않자 새로 <아시아 포커스 후쿠오카영화제>를 만들었고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 씨에게 그 집행위원장을 맡겼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두 영화제는 이름도 비슷하지만 둘 다 '아시아영화제'라는 점에서 그 성격도 같다.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두 영화제 모두 부부가 운영한다는 점이다.

사토와 마에다 부부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자녀가 없고,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함께 다닌다. 한 사람이 영어를 못하면 다른 사람이 영어를 보완한다.세계영화제를 누비고 다니는 부부는 이들 이외에도 몇 쌍이 더 있다.

20여 년 전 <3대륙 영화제>(프랑스 낭트)를 창설하고 운영하는 알랭 잘라도 부부와 베를린영화제의 영 포럼을 창설하고 2000년까지 거의 28년간을 운영해 왔던 울리히 그레고르 부부도 늘 함께 다닌다. 또 지난해 부산을 찾은 모릿츠 데 하델른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도 부인과 함께 다닌다.

그런데 이들 부부들의 경우 가끔은 서로 떨어져 다니는 경우가 있다. 지난 4월 말 이태리 우디네영화제에는 나와 니나 잘라도가 같이 있었다. 그 때 남편인 알랭은 전주영화제에 참가하고 있었다. 인도를 좋아하는 알랭이 인도영화제에 참가하고 있을 때 니나는 중국을 좋아해서 중국에 가 있는다. 에리카 그레고르가 제1회 부산영화제에 와 있었을 때 남편인 울리히는 유럽영화제에 가 있었다.

그러나 마에다와 사토부부는 예외 없이 항상 붙어 다니는 '잉꼬부부'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에드와르도 퀸틴 부에노스아이레스 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부부가 이 '잉꼬부부' 대열에 합류했지만... 또 이들 두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라이벌로서 서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

영화제는 영화를 선정하는 프로그래머들의 사활을 건 전쟁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화제의 성패는 그 영화제에서 보여주는 영화의 질적 수준과 그 내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의 내용이 '꽝'이고 프로그램이 별 것 아니라면 그 영화제는 그날로 끝장이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들은 남보다 먼저 좋은 영화를 유치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다른 곳에서 틀지 않은 '싱싱하고 따끈따끈한' 그리고 영화팬들이 좋아할 영화를 고르기 위해서 동분서주한다.

성격이 같거나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영화제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인구도 많지 않은 한 도시에서, 같은 아시아영화만을 골라서 보여주는 영화제 사이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더구나 두 영화제는 별도로 프로그래머를 두지 않고 두 부부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영화를 고르고 있다. 슈 마에다와 미오 부부는 40대 후반, 사또 다다오와 히사꼬 부부는 70대 중반. 그러니까 후쿠오카는 장년의 부부와 노년의 부부가 마치 '오케이 목장의 결투'처럼 한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결전장(決戰場)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1989년 가을 임권택 감독의 소개로 사토 다다오 부부를 처음 만났다.

1989년 8월 임권택 감독과 내가 모스크바영화제에 다녀 온 직후였기 때문에 임 감독은 사토 다다오 부부에게 농담으로 '세계적인 감독을 술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사람' 이며 '자기가 빨리 죽으면 여기 있는 김동호 사장 때문이라고 알아 달라' 고 소개했다.

그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던지 사또 부부는 한국을 방문해서 나를 만나게 되면 그 말을 상기시키곤 했다. 임 감독 말에 의하면 사또 다다오 씨는 마닐라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를 본 후 임 감독의 열렬한 팬이 되었고 임 감독이 일본을 방문해서 그를 처음 만난 후에는 한국영화의 후견자가 되었다고 한다.

올해 74세인 사토는 일본의 대표적인 평론가이며 오랫동안 일본영화학교를 창설, 그 교장으로 있으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많은 저서를 남겼고 몇 년 전에는 임권택 감독에 관한 책을 일본어와 한국어로 출판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자주 한국을 방문했고 사토 부부를 만나는 일도 늘어났지만.

그에게는 이런 일화도 있다. 1990년에 <한국영화입문>이란 책을 작고한 이영일 평론가와 함께 출판했고 서울 세종호텔에서 출판기념회도 개최되었다. 그 이후 한 독자가 많은 분량의 오류를 붉은 볼펜으로 지적한 것을 보고 그는 즉시 일본 전역에 배포된 책을 전량 회수하여 불태워 버렸다. 그만큼 그는 자존심이 강한 학자이면서 자신에 대해 엄격하다.

나하고는 이런 악연도 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창설할 때다. 영화제기간을 정하기 위해 극장측과 교섭한 결과 추석 직전에 영화제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영화제 기간을 9월 13일부터 9월 21일로 잡았다.

그 해 5월 칸영화제에 가서 주요인사들에게 부산방문을 교섭하면서 이 기간이 공교롭게도 후쿠오카영화제와 개, 폐막식 시간까지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국제비평가연맹 사무총장인 클라우스 에더는 나에게 개최기간의 변경을 충고하기도 했다.

10여 곳의 극장을 겨우 빌려놓은 입장에서 일정변경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우리는 예정대로 밀고 나갔다. 그런 가운데 '김 아무개가 이럴 수 가 있나'라는 사토 다다오 씨의 비난도 인편에 들려왔다.

영화제가 끝난 후 하와이 영화제 초청 받아 가게 되었을 때 이런 사정을 잘 알고있었던 자넷 펄슨 하와이영화제집행위원장이 사또 다다오 부부와의 만남을 미리 주선해 놓았다.

하와이로 떠나기 앞서 나는 두 사람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고 저녁을 초대한 자리에서 우리의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양해를 구했다. 이와 함께 제2회 영화제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기획하고 있는 <아시아 最古의 영화 특별전>을 소개하고 가장 오래된 일본영화의 추천을 부탁하면서 그가 부산에 와서 일본영화를 직접 소개해줄 것을 제의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의 오해와 노여움을 풀었고 지금도 영화제에 서로 초청하고 해외에서도 자주 만나 친교를 맺고 있다.

사토 다다오 부부에 비한다면 1956년 생인 슈 마에다 부부는 40대 후반의 청년 부부라고 할 수 있다.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있었던 1988년 마에다 부부는 한국영화를 선정하기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언제부터인지 수염을 기르고 다니지만 당시 32세의 청년이었던 그는 매우 소탈하고 순박했다. 그의 부인 미오는 토끼를 좋아해서 최근까지 토끼애호모임의 회장을 맡았을 정도다.

나는 그들 부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해졌다. 어떤 때는 함께 돌솥밥을 먹다가 맛있다고 하길래 식당주인에게 부탁해서 그 돌솥을 가져가게 한 일도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들 부부를 만나면 으레 대포집을 찾아 거의 밤을 지샌다.

후원자가 많지 않아 그들은 매우 어렵게 영화제를 끌고 가고 있다. 그러나 영화제 기간에는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헌신적으로 그를 돕는다. 하루 일정이 끝나면 세 명의 심사위원, 열 명 안팎의 해외 손님들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가라오께'도 가면서 가족처럼 지낸다. 나는 그 분위기를 좋아한다.

1997년 7월 나는 캐나다 교포 여자감독인 헬렌 리와 중국 감독 황지엔신(黃健新)과 함께 심사위원으로 초청 받았다. 후쿠오카에 체재하는 동안 우리는 영화제의 전 스탶은 물론 자원봉사자와 함께 밤늦도록 저녁을 먹고 일본 소주를 마셨으며, 2차, 3차를 돌아다니면서 밤새도록 함께 춤도 추고 이야기를 나눴다. 낮에는 데스크를 지키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간식거리를 사다주기도 하고.

특히 영화제 기간중인 7월 15일 새벽 다섯 시 5분전에 시작된 '하카다 마쓰리' 축제에 함께 참가해서 새벽에 후쿠오카 시내를 함께 달렸던 추억은 좀처럼 잊을 수 없다. 지금도 마에다 부부를 만나면 그때의 낭만이 되새겨진다.

나는 사토 다다오 씨와의 끈끈한 인연 때문에 1997년 이후 매년 9월이면 비록 하루만에 귀국할지라도 후쿠오카를 방문한다. 사토 다다오 씨가 이끄는 <아시아 포커스 후쿠오카영화제>는 시가 주최하기 때문에 체재하는 동안 해외 게스트에게는 1만 엔의 일당을 지급할 정도로 비교적 예산이 넉넉한 편이지만 시의 공무원들이 주도하기 때문에 가족적인 분위기는 덜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후쿠오카를 매년 찾게되는 것은 어느덧 후쿠오카가, 마치 한국처럼 느껴지는 그 분위기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 '프리미어' 7월호 (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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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http://columnist.org/ge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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