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7월9일 No. 80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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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맛을 타고 온다

먹거리의 승부는 맛과 품질에서 판가름된다. 그것이 최강의 무기요 최후의 해결사이기 때문에 이것만 확실하면 승부는 끝난다.

그럼에도 성공하는 업소가 별로 많지 않다. 잘 알면서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탓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원하는 상급학교에 갈 수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항구도시에서 오랜 동안 음식점을 하는 한 친구가 그런 식이었다. 어쩌다 한번 들리면 도대체 이래 가지고 밥이나 먹고사는가 싶을 정도였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 그렇고 그런 메뉴에 남다른 맛이나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위치도 유동인구가 적어 한적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친구라고 동창회 등 색다른 모임 같은 것이 있으면 그 집으로 갔다. 그러나 형수님 떡도 커야 사먹더라고 이런저런 불평들을 하며 차츰 그곳을 외면했다.

몇 년 뒤였다. 외지에서 간 친구들이 그래도 그 친구 집으로 한번 가자고 하니 고향쪽 친구들이 역시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이유가 전과 달랐다. 손님이 밤낮 없이 줄을 잇는데 우리가 가면 친구들이라고 신경 쓰다가 다른 손님 접대에 흠이 생기게 되고 그러면 도와주는 게 아닌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어리둥절하니 이유를 설명했다. 그 친구가 식당의 메뉴를 꽃게로 단일화하고 생꽃게 무침을 개발했는데 그게 적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시 바쁘니 거기서 모임을 갖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 친구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어느 여름 휴가 때 거길 가려고 전화를 했더니 반가워하면서 점심을 하려면 오후 2시 이후에 오라고 했다. 그때 쯤이면 식당이 좀 한가해지니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일행은 꽃게무침 맛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그 맛을 보여주겠다는 이가 여럿이었다.

나중에 그 친구와 따로 한잔 할 기회가 있어 성공 비결을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알면서도 행동이 따르지 않았는데 그걸 실행에 옮겼을 뿐이었다. 열등생이 어느 날부터 책을 파고 든 거나 마찬가지였다.

항구도시라 꽃게는 흔한 종목이고 웬만한 사람이면 그 맛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거기에 착안했다. 남들이 다 하지만 색다른 맛과 독특한 품질로 정면승부를 하면 안목 높고 입맛 까다로운 손님들이 그걸 놓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꽃게탕, 꽃게찜 등을 하지만 생꽃게 무침에 비중을 두었다.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시뻘겋게 했다. 그러나 매워서는 안 되니 그에 맞는 고추를 직접 생산하기로 했다. 인근 농촌에 하청을 주어 그 고추를 재배하게 한 것이다.

꽃게는 제철에 대량으로 구입, 냉동 창고에 보관하고 자기 집 꽃게가 중국 등 외국산이 아님을 소비자들이 알도록 했다. 맛의 비법은 그와 마누라밖에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성공이었다. 해산물에 대한 입맛이 여간 까다롭지 않는 항구의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점심이나 저녁이면 그 집에 자리가 없어 밀려나온 손님들이 다른 꽃게집으로 가게 되었다. 또 그 식당 부근이 구도심이라 신도시에 밀려 밤에는 유령이라도 나올 것처럼 한산한 거리인데 거기만 북적인다.

그 집 맛에 대한 입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도에서 발행하는 관광안내책자의 앞쪽에 이름이 올랐다. 건물도 그 자리에 새로 지어 분위기가 더욱 밝아졌다. 장사와 별개지만 그동안 가족들의 우환과 참사로 시달렸던 그의 고통도 많이 아무러들었다. 맛을 타고 그에게 찾아 온 행복이 그렇게 해 준 것이다. 아니 행복이 찾아 들었다기보다 그가 행복을 그처럼 만들어 냈다.

- 에쓰푸드(주) 사보 (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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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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