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7월 3일 No. 79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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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행복한 나라?


여성부가 보낸 올해 여성주간(7월 1∼7일) 기념식 초청장은 이렇게 시작된다.“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인정하고 차별은 극복하여 ‘여성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갑시다.”

이 초청장의 ‘여성이 행복한 나라’라는 문구를 읽으며 문득 한 선배가 떠 올랐다.언론계의 대선배로 최고위직까지 올라가 ‘성공한 여성의 대명사’라고 할 만한 그 분의 어려웠던 시절 체험담을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떠 오른 것이다.

“제가 부국장으로 있는 동안 편집국장이 여섯번 바뀌었는데 그중 다섯명이 후배였습니다.10년 이상을 그렇게 지내는 동안 나 자신의 갈등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 대하기가 민망할 지경이었습니다.제 자신이 편집국 한쪽에 놓여 있는 붙박이장 같은 기분이 들었지요.중간에 그만 두려는 생각도 했지만 내가 이 직업을 얼마나 좋아했나,또 여기서 일한 20년 30년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였나,그 기간을 빼면 무엇으로 내 생을 설명할 수 있나 등등의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매일 아침 편집국에 들어서면서 산뜻하게 기분 좋게 제 자리에 앉아본 적이 드물었어요.”

한국여성의 열악한 지위를 이야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것으로 여성권한 척도(GEM)가 있다.유엔 개발계획(UNDP)이 각 나라 여성 국회의원,고위관리직 비율 등을 기준으로 해서 해마다 발표하는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66개국중 61위로 최하위권이다.불가리아,크로아티아 같은 나라들 보다 낮은 수준이다.세계 평균 여성국회의원 비율이 14·7%인데 비해 한국은 5·9%에 불과하고 5급 이상 여성관리직 공직자 비율은 4·2% ,30대 기업 여성관리자 비율은 4·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 핵심부처인 법무부에 첫 여성장관이 등장한 것을 비롯해 4명의 여성장관이 참여정부에서 일하고 있지만 아직 여성차관은 배출하지 못한 것이 한국 여성공직자의 현주소이다.대통령이 임명해서 낙하산 처럼 내려오는 장관 보다 공무원 사회의 밑바닥에서 부터 차근 차근 올라가야 하는 차관이 여성들에겐 더 어려운 자리인 것이다.

여성권한 척도 보다 더 심각한 수치가 또 있다.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70%,4년제 대학졸업자의 여성비율은 47%에 이르는데 대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남성(93%)의 절반 정도(54·7%)에 불과하다.우리나라 성매매 시장규모가 2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육아문제로 출산율( 1·17)이 세계 최하위,이혼율이 세계 2위라는 통계 역시 여성이 행복하지 않음을 반증한다.

지루하게 나열된 이 숫자들 속에는 ‘편집국 한쪽에 놓여 있는 붙박이장 같은 기분’이,아니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절망과 분노가 숨겨져 있다.이런 통계수치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결코 ‘여성이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없다.

지은희 여성부 장관은 “여성이 행복하면 남성도 행복하다.”고 말한다.이 주장은 아내가 행복하면 남편도 행복하다는 식의 수사를 넘어선 실증적 근거를 갖고 있다.미국의 경우 여성관리직 비율이 상위 10%인 기업은 여성관리직 비율이 하위 10%인 기업보다 총 수익률이 7% 높다고 한다.일본 경제산업성도 최근 회사의 여성비율이 10% 높아질 경우 총자산 이익률이 0·2% 향상된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도 “여성은 배려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21세기 지식사회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이 요청되고 있다.유연하고 협력적 관계형성에 강점을 지닌 여성적 특질이 새로운 조직문화의 리더십으로 주목 받는 것이다.그러나 참여정부가 국정과제로 내 세운 ‘국민통합과 양성 평등사회 구현’에 아직도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고 여성계는 평가한다.‘남녀 평등에 관한한 최고’로 꼽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사실 매우 간단하다는 것을 노무현 대통령이 아직도 모르는 것일까.

- 대한매일 2003.07.03

임 영 숙
대한매일 주필
http://columnist.org/y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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