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6월 29일 No. 79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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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직업 뜨는 직업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직업의 부침(浮沈)도 심하다. 1917년 인천 동구 금곡동에 '조선인촌(朝鮮燐寸)'이 설립되면서 성냥공장이 들어섰다. 그 때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군인들의 애창곡이 '성냥공장 아가씨'다. 성냥이 라이터, 휴대용 가스버너 등으로 대체되면서 '성냥 제조원'이 직업사전에서 사라졌다. 1970년대 후반까지 전국적으로 300여개에 달했던 성냥공장은 현재 경북 의성 등 3곳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80년대 초까지 버스에는 차장이 따로 있었다. 만원버스에 사람들을 차곡차곡 태우고는 버스 옆구리를 탁탁 두들기며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 안내원'도 버스 자동문이 생기면서 사라졌다. 컴퓨터의 발달로 타자기 사용이 줄면서 타자기 수리원이 없어졌고, 대규모의 염전 발전으로 사람 손이 불필요해져 염전 감독(일명 염전 반장)도 역사 속의 단어가 됐다. 주산·부기, 생사(生絲)산업기사, 전화교환기능사 등의 자격증도 휴지가 돼버렸다.

'95년 통합본 한국직업사전' 이후 8년 만에 발간된 '2003년 통합본 한국직업사전'에는 많은 직업이 사라진 대신 새로운 직업들이 등장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발간하는 직업사전의 직업명은 지난 2000년 1만2,307개로, 5년 전보다 770개가 늘어났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뜨는 직업은 단연 IT분야다. 전자상거래 전문가, 컴퓨터 게임 개발자, 컴퓨터 보안 전문가 등 8개 직종이 새로 생겼다. 이색직종으로는 자외선 방지 플라스틱 제품 제조자인 '경화원(硬化員)'이 눈길을 끌고, 이벤트학·바둑학 교수도 등장했다.

직업도 시대에 따라 선호도가 바뀐다. 한때는 안정성과 보수면에서 인기를 끈 직업은 은행원이었으나 IMF 이후 은행의 구조조정이 상시화 되면서 인기는 둔화됐다. 90년대 중반까지 10위권에 들었던 기자직도 요즘은 인기서열에서 한참 뒤로 밀려났다. '사오정(사십 오세 정년)' 세대니 '오륙도(오십 오세까지 근무하면 도둑과 같다)'라는 우스개 소리에 영향 받은 듯 공무원과 교사는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처우가 향상된 데다 장기근속자의 경우 퇴직 후에도 생활이 보장되는 연금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요즘은 개성이 톡톡 튀는 독특한 직업이 뜨고 있다.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고 음식을 장식하는 남성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있는가하면 상품이나 회사의 이름을 '설계'하는 네이미스트, 결혼 예산 작성부터 결혼식 이벤트까지 책임지는 '웨딩플래너', 집안과 사무실의 분위기를 바꿔주는 리모델링 컨설턴트 등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렇다면 직업으로서의 전문경영인은 어떤가?. CEO는 그 분야 최고 전문가로 도전해보고 싶은 자리다. CEO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들은 입사와 함께 '일 벌레' 칭호를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자신과 가족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오직 회사의 발전을 위해 일에 묻혀 살았다. 그래서 '일 벌레' 훈장 위에 전문경영인이라는 월계관을 쓰게 됐으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임에 틀림없다.

최고경영자는 사고능력이나 추진력 같은 개인적 자질보다는 실적으로 말해야 한다. 경영능력이 최우선이다. 주주나 종업원, 고객에 어떻게 유무형의 가치를 전달하느냐에 따라 능력을 평가받게 된다. CEO의 역량에 따라 기업은 살기도하고 죽기도 한다. 그만큼 어렵고 막중한 자리다.

그러나 전문경영인이 목표를 달성했을 때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직은 제대로 구축되지 못했다. 시장경제체제에서 발전의 원동력은 '경쟁'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한 만큼의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오너 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CEO는 내년부터 분기·반기 보고서를 공시할 때 '허위가 드러나면 민·형사 책임을 지겠다'는 서명을 해야 할 전망이어서 갈수록 권한은 약하고 책임은 무겁다.

우리나라 직업인 10명 중 6명은 자녀들이 자신과 같은 직업을 이어받기를 꺼린다는 조사결과를 보면 어떤 직업인들 수월한 것이 없다.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수입, 여가시간, 적성, 안정성, 사회적 평가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겠지만 지금은 다양성이 살아 숨쉬고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다. '좋은 직업'은 없고, 자기가 '좋아하는 직업'만이 존재할 뿐이다.

- CEO Report 6월 15일 (2003)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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