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6월 24일 No. 78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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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세상, 차라리 웃자

필자는 TV뉴스보다 코미디프로를 더 즐겨 본다. 흑백TV 시절부터 신문쟁이 30년을 마감한 요즘도 그 버릇은 여전하다. 일요일 저녁 9시 뉴스시간대에 방영되는 ‘개그콘서트(개콘)’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혼자서 빙그레 웃으면 “그 나이에 애들 말장난이나 보고 웃는다”고 마누라는 은근히 핀잔을 주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TV뉴스는 짜증나고 코미디프로는 잠시나마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기자로 뉴스만 쫓다가 퇴근하여 같은 뉴스를 반복해서 듣는다는 것이 우선 내키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는 유신시절부터 5공 시절까지 뉴스 밸류에 관계없이 대통령 동정부터 들어야 하는 것도 거슬렸다. 오죽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시절 ‘땡전 뉴스’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올 봄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의 석사학위논문에 따르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중반 2주치 보도(82건)를 분석한 결과, 전두환 전 대통령에 관한 보도가 27건으로 가장 많았고 김영삼(23건), 김대중(22건), 노태우(10건) 전 대통령이 뒤를 이었다는 분석만 봐도 알 수 있다. 보도순서도 전 전대통령 시절, 대부분 1~3번째에 집중돼 ‘땡전 뉴스’를 실감나게 한다. 지금은 권위주의적 보도 틀에서 벗어나 사안에 따른 보도로 개선되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논문은 밝히고 있다.

요즘 코미디는 풍자나 해학보다는 말장난에 치우친 개그에 집중돼 아쉽다. KBS의 ‘개콘’이 인기를 끌자 SBS에서도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을 일요일 아침에 방송하며 시청자에게 웃음을 찾아주려 안간힘쓴다. MBC ‘코미디하우스’도 토요일 저녁 7시대로 자리를 옮겨 공중파 3사가 주말 웃음대결을 펼친다.

얼마 전엔 민노당 권영길 대표가 코미디하우스 ‘삼자토론’ 코너에 출연하여 화제가 됐다. 권대표는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저 권영길은 서민의 웃음을 책임지는 김학도 후보를 지지합니다.”라고 밝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선사했다.

대통령까지 코미디 소재 삼아야 열린사회

코미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는 1980년대 ‘유머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다. 김형곤씨가 비룡 그룹 회장으로 나왔던 이 코미디는 당시의 사회분위기와 맞아 떨어져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잘돼야 될 텐데” “잘될 턱이 있나” “밥 먹고 합시다”등의 유행어를 낳았다. “나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딸랑”하며 윗사람 비위 맞추는 기회주의자 이사 역을 맡았던 김학래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손놀림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정치풍자 코미디시대를 연 이 코너는 풍자의 강도가 높아지자 재계로부터 무언의 압력을 받았고, 언론은 코미디의 풍자성을 옹호하기도 했다. 정치인은 물론 대통령까지 코미디 소재로 삼는 사회가 열린 사회다.

요즘은 개콘의 ‘생활사투리 코너'를 재미있게 본다. “내 아를 나아도” “음마, 거시기허요” 등의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는 모호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영남에서 길을 물어보면 “요래 요래 요래 가면 됩니더”라고 한다거나 호남에서 “거시기 했남” “그럼 거시기 혀”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경우와 같다. 사투리의 강점은 자신들의 언어를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일종의 쾌감도 있지만, 친밀감과 함께 지역민들에게는 강한 연대감을 준다.

사투리의 ‘득세’는 김대중 정부 이후 코미디는 물론 드라마나 영화에서 상승작용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인기 연예인들이 이른바 ‘개인기’를 선보일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낸 것도 한 몫 했다. 새 정부 들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말씨가 대 유행이다. 개그맨 김상태나 배칠수가 아니더라도 어린이까지 “맞습니다, 맞고요”를 연발한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살아가기가 어려워지면서 웃음도 메말라간다. 한국인의 소탈한 웃음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 하회탈이다. 눈 꼬리가 아래로 흘러내린 하회탈의 웃음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친근감을 느낀다. 웃음의 형태도 다양하다. 소리 없이 웃으면 ‘미소(微笑)’, 떠들썩하면 ‘홍소(哄笑)’, 크기만 하면 ‘대소(大笑)’, 얼굴의 주름살이 펴질 정도로 유쾌하고 활달하게 웃으면 ‘파안대소(破顔大笑)’다. 눈웃음, 너털웃음이 있는가하면, 표정변화 없이 소리만 내는 헛웃음도 있다. 웃음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조소(嘲笑), 비소(誹笑), 냉소(冷笑), 코웃음은 남을 얕보고 깔보는 빈정거림이 담겨 있어 차라리 웃지 않는 것만 못하다.

긴장,스트레스 웃음으로 날리자

웃음은 건강을 위한 묘약이다. 웃음은 의사의 처방이 필요 없고 공짜다. 웃음은 세계 공통의 언어다. 수천 가지의 말이 있고, 수십만 가지 방언이 있지만 웃음이란 언어는 별로 차이나지 않는다. 웃음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들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웃음은 통증을 덜어주는 작용도 한다. 어린이에게 웃기는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손을 얼음물에 넣게 한 실험에서 더 많이 웃는 아이들이 차가움을 덜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잘 웃는 어린이는 혈중 코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의 농도가 낮았다고 한다.

기자들의 위기감도 경제위기 못지 않다. 직업으로서의 기자 인기 순위도 뒤로 쳐졌다. 보람은 줄고 규제는 늘어 일하는 재미가 없다. 경기전망은 ‘오늘도 흐림’이고, 장래전망은 “매우 흐림‘이다. 평생 직장 개념이 무너지면서 ‘사오정(사십 오세 정년)’시대라는 우스개 소리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느는 것은 한숨이요, 쌓이는 것은 스트레스다. 늘 팽팽한 긴장 속에 취재현장을 누비다보니 심신은 지친다. 답답한 세상 차라리 웃자. 웃음은 삶의 윤활유 구실을 하는 묘약이다.

- 월간 ‘사진기자’ 6월호 (2003.06)

이규섭

시인·칼럼니스트, 한국신문방송인클럽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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