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6월 22일 No. 781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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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노릇 못해먹겠다"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장안의 화제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각종 현안에 대한 위기감과 자괴감, 심리적 무력감의 표출이다. "문화의 충돌을 많이 느낀다"는 발언에 이어 "도와줬는데 고마워 않고 트집 잡을 땐 어떻게 하냐"며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동안 '우군(友軍)'으로 생각해왔던 노동자, 학생, 전교조 등 소위 '지지층'이 최근 물리적 집단행동을 통해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데 따른 불만과 무거운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내 몫 챙기기'에 바쁜 이익집단들의 요구가 판도라 상자 열리듯 분출하면서 해법 또한 갈팡질팡이다. 혼란을 수습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부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정책 운영 시스템도 엇박자로 겉돈다. 그뿐 아니라 형 건평씨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의혹과 잡음에 대한 직접해명에도 불구하고 불거졌던 의혹들을 말끔히 씻지 못해 여론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오죽 답답하면 잇달아 그런 말까지 했을까 하고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는 부적절한 발언이다.

대통령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은 맥빠지고 불안하다. 대통령은 국정의 핵심 키다.

지금의 위기는 대통령이 중심을 잡아야 극복할 수 있다. 자녀들이 공부는 않고 말썽을 피우거나, 무리하게 용돈을 요구한다고 "가장 노릇 못해먹겠다"고 가정을 해체할 수는 없다. 가장이 중심을 잡아 부부가 함께 의논하고 자녀들과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요즘 "한국서 기업 못해먹겠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중견 전자부품업체 70여곳이 결성한 '한국 EMS산업협의회' 정국교 회장은 한 인터넷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대로 가다간 한국 기업 다 떠난다"고 목청을 높였다.

주 5일제, 고용허가제, 최저임금 인상 등 온갖 생색은 정부가 내고, 부담은 기업이 해야하는 데 중소기업이 버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에서 일감을 받아온다. 대기업이 쉬는데 중소기업에 일이 있나. 일감을 받는다 해도 근무일수가 줄어드는 만큼 근무 시간을 초과해 일을 해야 한다. 원가상승분은 고스란히 중소기업이 떠 안게 된다. 대립각을 세우는 노사문제도 안타깝고 목소리 큰 쪽의 말만 들어주는 당국에 대한 불만도 이만저만 아니다. 3D업종은 외국인 노동자 덕에 그나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데 일부 연수원생들은 제조업으로 데려와 봤자 서비스업으로 달아나기 일쑤라는 푸념이다. 은행 빚이나 복잡한 연대채무 등이 없으면 기업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에서 심각한 위기의식을 절감한다.

"고대 중국 황제는 '새롭고 새롭고 또 새로워진다(日新 日新 又日新)'는 글귀를 세수 대야에 새겨놓고 아침마다 물 속에 비친 이 일곱 글자를 되뇌며 스스로 새로워질 것을 다짐했다지만, 내 대야 물 속에는 당국의 시정명령, 세금고지서 그리고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어음밖에 깔려 있지 않다. 나는 매일매일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고 또 읽는 심정으로 사후(死後) 내 모습을 그려보고 있다". 어느 중견기업인이 한 소그룹 포럼에 참석하여 연설한 참담한 고백도 "한국에서 기업 못해먹겠다"는 심정을 대변한다.

도시근로자 주머니는 얄팍해지고 실업자는 쏟아져 나온다. 기업들의 투자심리는 식어가고 재고는 쌓인다. 성장률은 3%대로 떨어지고, 금융시장은 각종 위기설로 흔들리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정부는 경기부양과 부동산 대책 등 '땜질식 처방'만 내놓고 있을 뿐 경제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위기의식을 느낀 기업들만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뿐이다.

경영환경이 불확실할수록 신축성 있는 경영체계 확보가 중요하다. 상황이 바뀌어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유연함이 신축성 있는 경영시스템이다. 단호한 결단과 추진력으로 불확실성을 정면 돌파할 것이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핵심역량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냐의 선택은 오로지 CEO의 몫이다.

- CEO Report 5월 30일 (2003)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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