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6월 20일 No. 779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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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언제 끌 수 있을까요

지난 13일 심효순과 심미선 두 여중학생 1주기 추모 촛불 집회가 서울 시청 앞 광장을 비롯해서 전국 곳곳에서 크게 열렸습니다. 서울 시위대의 미국 대사관 앞 접근을 막느라 경찰이 애먹기는 했지만 평화롭게 시위가 끝났습니다. 촛불 시위에 대해 정부 당국이 '추모'는 되고 '반미'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반미'의 범위는 어디서 어디까질까요? 무조건적인 미국 혐오를 반미라고 한다면 반미는 나쁩니다.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인 미국 숭배와 찬양이 친미라면 친미 또한 그릅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민족의 자존과 생존입니다. 정부 당국의 당부는 평화적 시위의 성격을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겠습니다.

로마가 광대한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이 막강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인간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를 중히 여긴 덕분이기도 합니다. 힘세다고 타국인의 생명과 인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미국에 이롭지 않습니다. 평화적이고 온건한 방법으로 그것을 일깨우고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을 '반미'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촛불 시위는 이 날로 200일째를 맞았습니다. 다음 날도 해가 뉘엿뉘엿해지자 서울 세종로 교보 빌딩 옆에서는 여느 날처럼 촛불 시위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도 소규모 촛불 시위는 이어질 것이고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두 어린 학생이 훈련중인 미군 장갑차에 깔려 비명에 간 뒤 한 해가 지나도록 '주둔군 지위 협정'은 그대로고 손질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용산 미군 기지 교회에서 두 여중생 1주기 추모 예배가 열리고 여기에 주한 미군 고위층과 미국 대사 내외가 참석했다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지요. 눈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밤마다 우리 땅의 어느 곳에선가 켜진 촛불들이 이런 정도나마 달라지게 했습니다.

과격한 혐오와 적개심을 드러내는 시위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지 못합니다. 촛불에 담긴 밝음과 따뜻함과 평화하고는 엇나가는 길입니다. 또 동참자를 내치는 길입니다. 추모 시위의 연사가 격앙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동참하려던 사람들도 주춤합니다.

우리 가운데 촛불 시위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촛불 한 자루 들 때마다 우리 상품의 미국 수출이 줄어드는데 무슨 촛불이냐, 추모도 좋고 '협정' 개정도 좋지만 미국에 밉보여 좋을 것이 뭐냐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또 촛불 시위가 일부 불순한 집단에 마당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의 촛불을 달러 손실로 재는 것은 가혹한 계산입니다만, 그 나름대로 걱정되어 하는 말들일 것입니다. 50여년 전 미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공산 체제에 들어갔겠지요. 약자의 처지는 서럽습니다. 도움 받는 처지는 어렵습니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다져야할 것은 외국 군사력에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미군 주둔은 지금 어쩔 수 없어 우리가 감내하는 것이지 변할 수 없는 철칙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군더러 있어달라 붙잡아도 볼 일 없다고 판단되면 어느 날 갑자기 떠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우리 지도자는 통일 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시대 국민과 지도자가 판단해서 결정할 일이지 지금 우리가 미리 결정해서 넘길 일이 아닙니다. 후대에라도 자립국방이 실현되도록 힘을 쌓는 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나라 힘을 빨리 키워서, 어이없는 일로 촛불 켤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두 나라 사이의 일이 잘 마무리되어 촛불 시위가 어서 끝나야겠습니다. 저 세상의 어린 두 학생도 그러기를 바랄 것입니다.

- 담배인삼신문 200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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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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