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6월 9일 No. 771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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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대학

최근에 '하이브리드 세상읽기'를 펴낸 홍성욱씨는 90년대 초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캐나다 토론토대학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연구를 하는 동안 미국 과학사학회의 슈만상에 응모했다. 박사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논문을 공모, 최우수작 한 편에 주는 세계적 상으로 이 를 받으면 속된 말로 하루 아침에 뜨는데 대개 프리슨턴, 예일, 하버드와 같은 미국의 명문대 출신들이 독점하다시피하며 외국인으로는 그때까지 영국 학생이 두어번 수상한 정도였다.

그가 머물고 있던 토론토대학에서도 아직 수상자를 내지 못한 형편이었다. 한 달 뒤쯤 심사위원장의 편지가 왔다. '서울대학교란 대학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그 학교 재학중이라는 증명서를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박사과정에 있으며 강의를 한다면 대접은 못 받아도 천대는 받지 않을 정도의 지적, 사회적 크레딧'을 가지고 있던 그로서는 기가 막혔다. 그처럼 '이름 없는 대학,(본인의 표현) 출신인 그가 결국 그 해 슈만상을 받았고 지금은 캐나다에서 활발한 학문활동을 하고 있다.

이는 홍씨의 개인적이고 극단적인 예라 할지 모르지만 서울대와 한국의 대외적 위상이 어느 정도인가를 헤아려 보는 실마리로서는 충분하다 할 수 있다.

현재 서울대를 비롯한 한국의 대학교육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서울대가 신입생들의 학력이 낮아 내년부터 입학 전 3-4주간 영어 수학 화학 물리 논리학 등 기초과목 '과외'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이에 앞서 얼마전 서울대 총장이 학생들과 가진 모임에서 '현행 글쓰기 훈련에 이어 내년에는 말하기, 토론, 한자와 영어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논리정연한 글과 말, 올바른 국어와 한자, 영어 구사는 대학교육과정에 절대 필요한 기초이며 도구이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강의와 연구에 지장이 많다는 보도가 여러 차례 나왔다. 건물을 짓겠다면서 기본 공구도 없이 맨손만 들고 나선 인부들 꼴이다.

이를 서울대만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이 부채질한 결과인 것이다. 국가의 장기적 안목 결여로 인문 사회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 분야는 고사될 위기에 놓였고, 생명과학대와 그 동안 이 나라 경제발전의 강력한 동력이 되었던 공대까지 날로 위축되고 있다. 그나마 입학한 학생들도 심각한 취업난 때문에 너도나도 고시공부에 매달리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기초학문 부실, 전공간의 심한 불균형 상태에서 의대와 법대만 지망자가 넘치는 건 진정한 의미의 대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의학과 법학의 정상적인 발전 또한 기대할 수 없고 선진사회로의 진입도 불가능하다. 이런 기형적인 '이름 없는 대학'들이 전국에 수백개 있은들 무엇하며 나라와 인류문화발전에 무슨 공헌을 하겠는가.

서울대 총장은 또 예술과 인문과학에 관심을 갖는 자연과학도, 자연과학에 식견을 갖춘 인문학도 양성에도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이 역시 글쓰기와 한자,영어 교육처럼 당연한 과정이다.

각 분야는 갈수록 복잡해져 인접학문과 연계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고, 인간의 학습기간도 자꾸 늘어 대학 4년은 기초교양을 닦는데도 모자란 실정이다. 그런 판국에 전공도 아닌 취업공부에만 매달리게 만들어 입체적이고 비판적인 안목, 종합적 판단, 균형적 사고능력과 감각이 부족한 청맹과니들을 양산해 놓았다. 그러니 이 사회가 늘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과 그 대학들이 세계적 안목으로 거시적이고 창의적인 학문 연구에 몰두, 국제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데 이처럼 골목 안에서나 큰 소리 치고 있는 서울대 등 한국의 대학들을 알기나 하겠는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교육당국은 물론 정치지도자와 국민들의 의식이 한시 바삐 깨어나지 않으면, 남의 뒤만 쫓는 이런 신세를 우리는 영원히 면치 못할 것이다.

- '담배인삼신문' 6월5일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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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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