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5월 14일 No. 76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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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섭의 세상 엿보기(12)
승용차 1000만대 시대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03년이다.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구입한 의전용으로 미국 포드사가 제작한 지붕 없는 4기통 캐딜락이다. 고종은 캐딜락을 전혀 타지 않았고, 궁궐의 구경거리가 됐다가 이듬해 노일전쟁 때 소실되고 말았다. 우리 손으로 만든 승용차가 첫선을 보인 것은 1955년. 미군이 쓰다 버린 지프의 엔진과 변속기, 차 축 등을 이용하고 드럼통으로 차체를 붙여 개조한 지프형 시발택시다. 1974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승용차 고유모델인 포니를 개발한 것이 국내 자동차역사다.

짧은 기간에 한국은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대국으로 뛰어올랐고, 올해 국내 자동차 생산은 32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연간 100만대씩 급증하고 있어 2013년 이전에 승용차가 20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고종황제 때 자동차를 도입한 이후 100년만에 국내 승용차가 1000만대를 돌파했지만 교통문화는 아직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토는 좁고 도로는 한계가 있다. 도로확장이 차량증가를 못 따른다.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고속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차량정체가 극심하다.

차량증가와 차량정체뿐 아니라 교통사고도 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선 매일 632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나 하루 평균 19명이 사망하고 954명이 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사고로 인한 재산피해액은 무려 3045억원에 이른다. 2001년부터 교통사고 사망자와 과속사고가 조금씩 줄었지만 교통문화가 향상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강력한 규제와 지속적인 단속이 효과를 나타낸 것뿐이다.

겨우 음주운전 폐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정착돼 가는 단계에서 시행된 '선별 음주운전 단속'은 감소추세인 음주운전을 원점으로 되돌리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또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교통법규 위반사범에 대한 잦은 사면도 준법의식을 흐려놓지 않을까 우려된다.

자동차 문화는 거창한 인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나쁜 운전습관일 뿐이다. 한국인의 난폭 운전은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곡예 하듯이 중앙선을 넘나들거나 끼어 드는 공격운전, 규정속도를 지키려는 운전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거나, 경적을 울리는 조급성 등이 우리 자동차문화의 현주소다.

고속도로에서 속도제한선 이하로 1차선을 차지하며 교통흐름을 저해하고, 갓길로 달리거나 차창 밖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예사다. 남의 차 앞에 주차를 하면서 사이드브레이크를 잠가놓고 연락처조차 남기지 않는 무례한 운전사도 많다. 접촉사고가 나면 도로 한가운데 차를 세워놓고 차량정체가 되거나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은 체 삿대질부터 한다.

운전대에 앉아보면 무단횡단을 일삼는 보행자가 아찔하고, 보행자 입장에서는 횡단 보도를 가로막고 신호대기하고 있는 자동차가 얄밉다. 남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와 양보만으로도 개선이 가능한 게 교통문화다.

- 담배인삼신문 2003.05.30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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