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5월 31일 No. 763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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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사진보다 원판(얼굴)이 훨씬 좋은데…" 카메라 앵글이 거짓말을 할 턱이 없지만 인물 사진이나 스냅사진을 보고 듣게 되는 기분 좋은 농담이다. 사진은 순간의 포착인 만큼 활짝 웃는 표정을 담기도 하고 일그러진 표정을 담을 수도 있다. 그래서 스냅 사진을 찍을 땐 의례적으로 '김치'나 '치즈'를 연발하며 웃음을 담으려고 애쓴다.

사진기자들은 순간의 포착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빈다. 이라크전을 취재하던 종군기자 1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원히 남을 한 순간을 포착하려다 비운을 맞았다. 시위현장을 취재하다 최루탄 가스와 물세례를 받기 일쑤고, 시위진압 경찰이나 시위대에 폭행까지 당한다. 폭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요즘은 '완장'까지 등장했다.

사진기자는 박수를 치거나 만세를 부르지 않는다. 박수갈채의 환희나 만세삼창의 감격 순간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분신자를 보고 불을 먼저 꺼야 할지, 사진을 먼저 찍어야 할지 사진기자들만이 느끼는 고뇌가 있는가하면, 보도사진의 가장 큰 함정인 '연출'과 '조작'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최근 미국 LA타임스가 이라크전 관련 사진을 임의로 합성하여 수정, 보도한 사진기자를 해고한 것은 빗나간 특종의식과 과욕이 빚은 결과다.

사건·사고의 순간을 포착하여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하는 신문사진의 생명은 정보와 메시지다. 아무리 리얼한 표현도 뉴스사진만큼 강렬한 메시지를 담을 수 없다. 봄나들이 스케치 등 일상사를 가볍게 다룬 피처사진이나 정치인들의 순간순간을 포착한 피처 뉴스 사진을 통해 독자들은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신문사진의 생명은 정보와 메시지

사진은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도사진을 둘러싼 왜곡시비가 불거졌다. 4월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위원장 임채정)가 '너무한 당신'이라는 제목으로 오보와 관련된 백서를 내놓았다. 그 가운데 '인수위의 목표는 사회주의' 발언파문과 관련해 전경련이 회장명의의 사과문을 인수위의 정순균 대변인에게 전달하는 사진을 왜곡보도 사례로 꼽았다. 청와대는 언론의 고질병으로 지적돼온 왜곡·과장 보도 등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오보백서를 발간했다지만, 구미에 맞지 않는 사진게재를 과장보도라고 해석한 자체가 왜곡되고 편협 된 발상이다.

청와대는 또 정부 각 부처에 기사의 성격을 '건전 비판' '악의적 비판' '오보'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려 사실상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공보관들이 '건전한 비판'과 '악의적 비판'을 매일 판단, 보고토록 의무화한 조치는 기자의 속내까지 파악해야하는 일로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떤 근거와 잣대로 오보를 판단하고, 비판 기사를 건전과 악의로 분류할 것인가. 실제로 각 부처의 기사분류 실태보고에 따르면 대부분 악의적 비판과 오보로 주장한 게 많았다고 한다.

보고 대상에서 방송과 인터넷 매체를 제외한 것도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24시간 뉴스 방송도 있고, 시간대별로 행해지는 라디오 뉴스와 논평,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인터넷 매체 등을 감안할 때 매체간 편가르기라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오보 막겠다며 취재제한 조치는 모순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자들은 오보가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사실관계 미확인 61.7%, 기자의 실수나 부주의 22.%, 구조상 제약 11.7%, 취재원의 실수 4.6%를 들고 있다. 가장 많은 '사실관계 미확인'은 언론사간의 과당경쟁 등에도 원인이 있지만 기자가 현장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 큰 원인이다. 오보가 없어지려면 언론사나 기자의 업무관행 개선과 윤리의식 확립이 우선돼야 하겠지만 정보공개, 정확한 브리핑 등 정보환경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 오보를 막겠다는 정부가 관청 사무실 취재를 금지하고 각 부처별 기자실을 없애 사실관계 확인 통로를 차단하는 것은 모순이다. 행정정보공개가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보공개법을 개정한 뒤 브리핑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순서다.

참여정부가 숨가쁠 정도로 쏟아내고 있는 새 언론 정책들은 거칠 뿐 아니라, 신문 가판 구독 중단 등 미시적인 부분에 매달려 있어 개혁의 우선 순위가 뒤바뀐 느낌마저 든다. 현직기자들도 족벌언론·소유권·상업주의·과점적 시장구조와 왜곡·편파보도 등을 한국언론의 문제점으로 꼽고 있는 만큼 정부는 언론과의 긴장 관계에 에너지를 소비할 것이 아니라 거시적 측면에서 언론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언론개혁의 필요성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언론정책은 정부의 일방적인 지침보다는 당사자인 언론과 국민 토론을 통해 제도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모색돼야 한다.

-월간 '사진기자' 5월호<이규섭 칼럼> (2003.05)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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