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5월 27일 No. 759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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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현직 기자 시절 파리 특파원으로서 각국 정상이 참석하는 유럽정상회담과 G7 회의를 몇 번 취재했다. 회담이 열리는 건물에 들어가 취재하려면 미리 신청해서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그 신청서를 보면 취재 신청자 분류의 여러 항목 가운데 '프리랜스 저널리스트'라는 것도 있다. 지방의 작은 신문이나 잡지의 기자라도 출입증을 받아 취재할 수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의 언론 환경과 다른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에서는 고위층이 참석하는 행사 현장에 소속 없는 독립언론인과 작은 매체의 기자가 취재하러 들어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G7 회의에는 유럽의 선진국들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정상이 참가하는데 각국 정부는 회의가 열리는 건물 안에 브리핑룸을 개설한다. 정상은 이 방에서 자국 또는 타국의 기자들에게 배경을 설명하거나 회의 결과를 알려 주고 질문도 받는다. 영국 브리핑룸에 들어갔더니 당시 존 메이저 총리가 영국 환경론자들의 연속적인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질문자들은 대개 독립적인 저널리스트거나 작은 매체의 기자들 아니면 임시로 그러한 지위를 얻어 들어온 횐경보존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의 끈덕진 질문에도 메이저는 참을성 있게 웃음 띤 얼굴로 답변을 계속했다.

올해 들어서서 중앙정부 기관의 기자실이 브리핑룸으로 대체되고 출입기자제도가 없어졌다. 기자는 공무원을 허락 없이 집무 시간중 집무실에 들어가 만나보지 못하게 되었다. 기자실과 출입기자제도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기자실과 출입기자제도가 필요성 때문에 생긴 것이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단점이 있어서 그 동안 개선해야 한다는 소리가 늘 있어 왔다. 과거 어떤 정권이 들어서서는 경찰서 기자실을 폐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경찰서 기자실이 되살아났다. 없애고 보니 경찰 쪽에서 오히려 불편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기자실과 출입기자제 운영은 개선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태까지 그대로 존속해 온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출입기자 명단에 끼지 못하면 기자실과 공무원 집무실에 들어갈 수 없고, 여기 들어가지 못하면 그 기관의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아주 고약한 배타성이다. 그러나, 이런 제약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공무원은 크고 작은 수많은 매체들의 기자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니 엄청나게 피곤해질 것을 감수해야 한다. 기득권을 지닌 언론사들의 기자는 다른 매체들의 수많은 기자들과 뒤섞여 취재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 또, 출입기자가 아니면 공무원들이 고개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출입기자제도마저 없으면 큰 언론사 기자라도 취재가 아주 어려워지는 것이다.

기자실과 출입기자제도가 비판받는 또 다른 이유는, 출입기자들이 나태해져서 기자실에 틀여박혀 출입처 보도자료만 받아쓰는 '발표 저널리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고, 때로는 출입기자와 출입처 공무원들이 너무 밀착되기 쉽다는 것이다. 타당성이 없는 엠바고(보도 유예 약속)로 정보의 유통을 막는 수가 있다는 것도 지적된다. 그러나, 기자 사회란 격심한 경쟁 속에 있기 때문에 이 폐단은 실상 그리 크지 않다.

아직도 우리 공무원들은 공개해야 할 것을 공개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며 업무 수행이 투명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처지가 곤란해질 것을 몹시 두려워하여 되도록 숨기려 드는 이들이 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그렇게 숨기다가 뒤에 가래로 막는다. 그나마 기자실과 출입기자제도가 감시 기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큰 파탄을 막을 수 있었던 적이 많다. 보도를 피하고 국민에게 덜 알려서 좋을 일은 거의 없다. 종전의 배타적인 기자실과 출입기자제도는 없애야 하지만, 정보의 유통과 언론의 감시 기능을 위축시키지 않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과 국가에 이롭지 않다.

- 담배인삼신문 200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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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칼럼니스트, 대진대학교 통일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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