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5월 21일 No. 754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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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전과 동전

약 140년 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위해 발행한 당백전(當百錢)은 명목가치와 실질가치 차이가 너무 커 유통 1년 만에 사라졌다. 실질가치가 당시 통용화폐인 상평통보의 5∼6배인 반면, 명목가치는 실질가치의 20배에 달해 쌀 한섬 값이 1년 사이 6배로 뛰는 등 백성들을 극도의 궁지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조정은 그 유통영역을 넓히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아무 효과를 보지 못하고 민심만 흉흉하게 만들었다. 결국 당백전은 1868년 5월 최익현(崔益鉉)의 상소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 악명은 여전해 지금도 우리 생활 속에 살아 있다.

'땡전'이란 말이 그것이다. 당시 백성들은 ‘당백전’에서 가운데 ‘백’자를 뺀 ‘당전’을 '땅전'으로 거세게 발음했는데 뒤에‘땡전'으로 변했다. 살림살이를 파탄으로 몰아간 당백전과 무능한 조정에 대한 멸시, 분노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었다. 5공 시절 밤 9시 시보가 땡하고 끝나자마자 으레 '전두환대통령은...'하며 뉴스가 시작되는 것을 '땡전'뉴스라고 한 것도 본래의 '땡전'에 1980년대 민심이 덧칠된 비아냥이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우리의 주화(통칭 동전)가 땡전이 될 위기에 놓여 있다. 물론 출생배경과 유통과정이 땡전과는 판이하지만 그 가치가 하락해 퇴출위기에 놓인 점은 비슷하다. 이미 1원과 5원짜리 제조는 중단되었고 10원짜리도 그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50원, 100원, 500원짜리 동전들도 실생활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동전이 최근 시민들의 '사랑'을 다시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동전 사용량이 지난 해 같은 기간의 2.2배로 5년만에 최고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반갑기보다 안타깝다.

소비자들이 경기가 좋을 땐 거스름돈 등으로 받은 동전을 방치하다가 경기가 나빠지면 한푼 두푼 모아서 쓰기 때문에 동전 사용량은 서민들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경기지표' 구실을 한다. 따라서 동전 사용량이 급속히 늘었다는 것은 경기가 그만큼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다. 가족단위 나들이가 많은 5월을 맞아 유통업계가 동전확보에 부심하고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마음을 무겁게 한다.

동전 사용량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저금통이나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동전이 많다. 그걸 꺼내 놓으라고 당국에서는 종용하지만 실생활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우선 화폐가치 하락과 물가상승으로 동전 쓸 곳이 별로 많지 않다. 동전을 아예 준비하지 않은 가게들도 많다. 지불액의 일부를 동전으로 내면 편치 않은 얼굴이 드물지 않고, 소비자들도 동전으로 거스름 받는 것을 꺼려한다.

동전은 저축을 권장해야 할 은행에서도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코흘리개들의 돼지저금통과 오락실.편의점 등 동전거래가 많은 업소들의 돈까지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수납을 거절하기 일쑤다. 은행이 앞장서 동전을 땡전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한 금융감독원이 팔을 걷었다. 은행들이 창구 담당인력과 관련비용을 줄이기 위해 동전 취급을 기피하는 것은 한국은행법 등을 위반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소액 금전에 대한 경시풍조 확산, 동전의 원활한 유통 저해 등 사회 문제까지 야기시키기 때문에 이를 강력히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불경기와 당국의 의지가 맞물려 동전의 땡전 위기를 상당히 완화시킬 것 같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미흡하다. 물가 안정, 동전유통구조 개선 등 근본적인 것들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국의 지시가 일시적인 방안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 담배인삼신문 5월16일(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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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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