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5월 15일 No. 75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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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지는 풍물
통방아·물레방아

물길 잡아주면 흥에 겨워 '삐거덕 쿵'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윤택해진 삶 속에서 생활의 여유는 생겼지만 마음의 여유는 잃어가고 있다. 전통문화가 퇴색하고 생활양식이 서구화되면서 조상의 손때가 묻고 삶의 지혜가 담긴 생활용구와 민구(民具)가 사라졌다. 사라져 가는 풍물을 통해 우리 것의 소중함을 되새겨 본다.

# 삼척 대이리 통방아

옛날 곡물을 가공하는 필수적인 도구가 방아다. 70년대초까지도 시골마을 곳곳에는 물레방아와 통방아, 연자방아와 디딜방아가 남아 있었으나 동력이나 전기를 이용한 정미소가 등장하면서 사라져갔다. 집안에서는 절구와 맷돌을 사용했으나 요즘은 믹서기가 그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강태공의 조작방아
혼자 찧는 절구방아
물로 찧는 물레방아
둘이 찧는 가래방아
비리방아 물을 부어
어절사 쿵쿵 찧는 방아
언제나 다 찧고 저녁 마실 갈꼬

방아종류에 따라 방아찧는 모습을 노래한 경북 성주지방의 '방아타령'이다. 서둘러 방아를 찧고 이웃에 들러 이야기꽃을 피우려는 아낙네와 며느리의 심정이 은근하게 담겨 있다. 물을 이용하여 곡식을 찧는 통방아는 '물방아' 또는 '벼락방아'라고도 한다. 통방아는 확(곡식을 넣는 돌 통), 공이(찧는 틀), 수대 등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통방아는 3∼5m 정도의 커다란 통나무를 이용하여 앞쪽에는 공이를 박고, 뒤쪽은 물이 담길 수 있도록 구이통을 판다. 귀대를 통해 흘러 들어온 물이 구이통에 가득 차면 물의 무게에 의해 공이가 올라가고 물이 쏟아지면서 공이가 내려가 확에 있는 곡식을 찧게 된다.

통방아는 계곡에 설치하며 물이 많으면 빠르지만 육중한 몸체로 인해 무척 느린 것이 흠이다. 그러나 사람이 발로 디디는 디딜방아에 비해 편리하고 공이의 힘이 세다. 디딜방아는 확 곁에 붙어 앉아 튀어나온 곡식이나 공이에 엉켜 붙은 곡식가루를 거둬 넣어야 하지만, 통방아는 확에다 곡식을 담아 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곡촌마을에 가면 원형이 제대로 보존된 통방아를 볼 수 있다.

곡촌마을 주민들은 조선 인조시대 경주 이씨 일가가 병자호란을 피해 그곳에 숨어들어 화전을 일구며 11대째 살고 있다. 6.25한국전이 일어난 줄도 몰랐을 정도로 오지중의 오지였다. 그래서 화전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너와집(나무판을 덮은 지붕)과 굴피집(참나무껍질을 덮은 지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서양의 벽난로에 해당하는 코콜, 불씨를 모아 두는 화티, 호롱불을 설치하는 두둥불을 보면서 삶의 지혜를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을 들머리에 있는 환선굴(천연기념물 제178호)이 1997년 10월부터 일반에 공개되면서 곡촌마을은 관광객들의 발길로 붐벼 옛 정취가 사라지거나 많이 훼손돼 안타깝다. 화전을 일구며 살던 주민들도 민박과 식당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등 생활패턴이 많이 변했다. 대이리 통방아는 그동안 몇 차례 수해로 피해를 입었으나 계곡 위쪽으로 옮겨 복원해 놓았다. 공이 위쪽 부분은 눈·비나 바람을 막기 위해 원추형의 덧집을 씌워놓았다. 강원도 중요민속자료 제 222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 정선 백전리 물레방아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비빙글 배뱅글 잘도 돌아가는 데
우리 집 저 멍텅구리는
나를 안고 돌 줄을 왜 모르나

물레방아는 500여년전부터 불리기 시작했다는 '정선아라리' 가사에도 등장 할 만큼 역사가 오래됐다. 물레방아도 통방아와 마찬가지로 물을 이용하지만 물레를 이용해 그 규모가 크다. 1930년대를 전후하여 물레가 커지면서 공이나 확이 기계식으로 바뀌었다. 1950년 이후로는 도정(搗精)이외에도 발전용·제지용으로 쓰이는 등 활용가치가 높았으나 전기사정이 좋아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강원도 정선군 동면 백전리에 있는 물레방아는 조선시대 말(1890년)부터 화전민들이 사용해 왔다고 하니 100년이 넘는다. 물레방아가 설치된 소하천을 경계로 정선군 동면 백전리와 삼척시 하장면 한소리가 마주보며 마을이 형성돼 있다. 처음에는 백전리와 한소리 주민 20여명이 방아계(契)를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민속마을이나 대형음식점 앞에 만들어 놓은 물레방아와는 다른 전형적인 재래식이다. 지금도 두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며 콩(메주), 고추, 옥수수를 빻는 생활용구로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

물레방아의 원리는 물의 힘으로 물레를 돌려 곡식을 찧는 것이다. 물레방아는 물의 떨어지는 힘을 이용하는 동채방아와 흘러가는 물의 힘을 이용하는 밀채방아의 두 종류가 있다. 백전리 물레방아는 '동채방아'로 1996년 강원도 민속자료 제6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백전리 물레방아의 물레는 소나무로 만들었다. 물레는 직경 250cm에 폭 67cm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박달나무로 만든 공이, 돌 확 등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방앗간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로 10년전에 보수하여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지붕은 이 지역에서 많이 재배되는 대마의 속대공으로 씌운 저릅집이며, 벽채는 나무판자를 이용하여 전형적인 산간 마을 가옥형태다.

백전리 물레방아는 약 50m 떨어진 보(湺)에서 물을 끌어들여 사용한다. 보의 위쪽에는 지하수가 솟아 나오는 용소(龍沼)가 있어 물을 항상 풍부하게 이용할 수는 입지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된 것도 문명과는 거리가 멀었던 오지였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포장도로에 시외버스가 가끔씩 들어가지만 10여년전 그곳을 찾을 때는 타임머신을 타고 산업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화전민들의 애달픈 발자국이 남아 있는 푸석푸석한 황토, 굽어 돌고 휘어 내려가도 끝이 없는 에움 길, 열병식 하듯 늘어선 옥수수, 소 쟁기로 밭을 가는 풍경, 토담집 뜨락에 앉아 더벅머리 아들의 머리를 깍아 주던 어머니의 정겨운 모습은 토속적 삶의 풍경들이었다. 하늘만 빠끔히 쳐다보이는 첩첩산중에서 주민들은 화전을 일궈 감자, 옥수수, 콩, 조를 심어 생계를 꾸려왔다. 요즘은 황기, 고랭지 채소, 삼베 원료인 대마 등으로 소득작물이 바뀌었을 뿐이다.

- <산재의료관리원> 봄호 (2003.05)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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