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5월 14일 No. 748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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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섭의 세상 엿보기(11)
'사이버 홍등가'

남도 땅으로 2박3일 취재여행을 다녀왔다. 초록 잎새에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고, 보리이랑은 훈풍에 은물결을 이룬다. 자운영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녘엔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다. 일상으로 돌아와 메일박스를 열어보면서 여행의 상쾌함이 휴지처럼 구겨졌다. 수북하게 쌓인 스팸메일 때문이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최근조사에 따르면 음란메일을 1인당 1주일 평균 11.6건, 하루 1.7건 받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3일간 쌓인 음란메일은 10여건이 넘는다.

삭제 클릭으로 '쓰레기 청소'를 하는 품도 만만찮아 짜증스럽다. '수신거부' 표기에도 시간이 걸릴뿐더러 클릭하면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음'이 나오는 게 많다. 수신거부를 클릭한 사용자의 정보는 마케팅 담당자의 서버에 저장돼 이곳저곳에서 스팸을 보낸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는 셈'이다.

낯뜨거운 음란 메일에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폐해가 심각하다. 제목만 야한 것이 아니라 초기화면에 성행위를 묘사한 이미지나 동영상을 담은 경우도 흔하다. 판단력이 부족하고 정서적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사이버 홍등가(紅燈街)'에 방치한 듯 부모들은 불안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스팸메일을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강력한 규제법을 제정해도 스패머들의 현란한 기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스패머들은 웹에서 e메일 주소처럼 생긴 것을 모조리 긁어오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발송 대상자를 수시로 업데이트 한다. 발송된 메일이 읽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소프트웨어로 사용 중인 e메일 주소와 휴면 메일 주소까지 골라낸다.

지난해 정보통신부는 전자우편 제목에 '광고' 표시를 하도록 했다. 하지만 법령 발표 후 스펨메일은 '광:고' '광∼고' '廣告' 등의 방법으로 변칙표기해 끊임없이 날아든다. 결과적으로 '광고'라는 문구를 삽입하면 누구든지 스팸메일을 보낼 수 있도록 합법화한 꼴이 됐다. 오는 6월부터는 제목이 끝나는 부분에 @를 표시하고, 본문에 전송자의 명칭·전자우편주소·전화번호 및 주소까지 기입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최근 미국 버지니아주는 다량의 스팸 메일을 보내거나 답장 주소를 허위 기재할 경우 중죄로 처벌하는 강력한 법을 제정했다. 또 인터넷서비스업체인 AOL, 마이크로소프트(MS), 야후 등 '닷컴 빅3'는 스팸 퇴치를 위해 공동 노력을 펴겠다고 발표했다. 갈수록 지능화되는 스팸메일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터넷 환경을 오염시키는 '공공의 적' 스팸메일 차단은 바퀴벌레 박멸만큼 어렵다. '클린 인터넷(Clean Internet)'운동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음란 메일이 범람하는 사이버 홍등가에서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 <담배인삼신문 5월16일> (2003.05)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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