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5월 7일 No. 742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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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가 만난 영화제 사람들(3)>
칸을 움직이는 사내들

5월이 되면 프랑스 남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작은 도시 칸(Cannes)은 작열하는 햇살만큼이나 영화에 대한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한 건물에 수용된 뤼미에르 대극장, 팔래 드 페스티발, 클로드 드뷔시 극장 앞은 물론, 해변을 따라 길게 들어선 머제스틱, 힐튼, 칼튼, 마르티네스 등 호텔 주변에는 영화 스타들을 보려고 몰려든 구경꾼들로 발붙일 틈이 없고, 이 호텔들 앞에 길게 펼쳐진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선팅을 즐기는 거의 전라의 미녀들로 붐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영화인들은 그 사이 사이를 비집고 영화를 보거나 영화를 사고 팔기 위해서 또는 정장을 하고 극장에 입장하거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 바쁘게 돌아다닌다. (오후 4시 이후에 뤼미에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자는 나비넥타이를, 여자는 정장을 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

바로 이곳에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가 매년 5월 10일을 전후해서 열리기 때문이다. 매년 3월에 열리는 미국의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화려함의 극치라고 한다면 프랑스의 칸 영화제는 그 권위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때문에 배우들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쉬라인 오디토리엄의 붉은 카펫을 밟고 들어가 아카데미상 트로피를 안아 보는 것을 평생 소원으로 삼고 있다면 감독들은 프랑스 칸 영화제에 초청 받아 뤼미에르 대극장의 붉은 카펫을 밟고 객석에서 기립박수 받는 것을 일생의 영광으로 여긴다.

정상의 영화제인 만큼 칸에 입성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칸에서 공식적으로 상영되는 영화는 100여 편에 불과하고 이 중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비롯한 심사위원대상, 감독상, 남녀주연상 등 수상 대상이 되는 경쟁부문에는 20여 편의 영화만이 엄선되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생기기 전인 1997년까지 한국영화는 50년 가까운 기간에 단 네 편만이 비경쟁 분야에서 선보였을 뿐이다. 그러다가 1998년 이후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매년 참가하는 칸 영화제의 선정위원들에 의해 매년 4-5편의 한국영화가 초청 받기 시작했고 2000년에는 칸 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경쟁분야에 진출했고 작년에는 임 감독의 '취화선'이 감독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칸 영화제는 베니스영화제에 이어 두 번째의 긴 역사를 갖고 있다.칸 영화제는 원래 1939년에 창설, 같은 해 9월 1일부터 9월 20일 까지 제1회 영화제를 개최하기로 정하고 준비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터지면서 무기한 연기되었고, 전쟁이 끝난 1946년 9월 20일에야 첫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었다.그리고 금년에 56회를 맞는다. 나는 부산영화제 준비를 위해 처음 방문한 96년 이래, 한 해도 빠짐없이 칸을 방문했다. 그러니까 올해까지 치면 여덟번 째가 되는 셈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은, 경쟁부문 감독 외엔 일체 초청하지 않는 칸 사무국에서 올해 처음 나를 6박 제공 조건으로 초청한 사실을 봐서도 알 수 있다. 경쟁부문 감독조차 3박밖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일종의 특별대우인 셈이다.

칸에 가면 영화는 주로 아침에 보고, 오후에는 약속된 영화제 인사와 방문객들 등과의 만남을 갖는다. 더러는 심사위원으로 초청하기도 하고, 개인 자격으로 초청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부산영화제와의 협력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토론도 한다. 이들과의 소통은 주로 영어로 이루어지는데 간혹 통역을 대동하는 사람도 있다.

각설하고, 이처럼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의 중심에는 질 자콥(Gilles Jacob)이 있다. 1978년부터 2000년까지 23년 간 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그는 피에르 비오(Pierre Viot)에 이어 제4대 회장(President)으로 취임했지만 칸 영화제에서 그의 영향력은 아직도 막강하다.

1996년 5월 부산국제영화제를 창설하기 직전 처음으로 칸 영화제를 찾았을 때 나는 처음 그를 만났다.훤칠한 키에 단정한 차림의 그는 유럽의 전형적인 귀족을 연상케 한다. 웃는 일도 거의 없고 다른 영화제에서 그의 모습을 본 일도 없다.다음해 2월초 네델란드의 로테르담 영화제가 폐막된 후 베를린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파리에 들렸을 때 나는 칸 영화제 사무실에 들려 다시 그를 만났다. 그 이후 나는 1년에 두 번 그를 정례적으로 만난다. 2월초 칸 사무실에서 만날 때는 그 시점에서 완성되었거나 후반작업 중에 있는 한국영화를 소개하기 위해서, 그리고 5월의 칸 영화제 기간 중에는 한국대표단을 소개하기 위해서. 조용하지만 그는 매우 권위적이면서 영화제에 대한 집념과 애착은 남달리 강하다.

2003년 3월에는 프랑스의 도빌 아시아 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와의 자매결연식을 현지에서 가졌는데 귀로에 들러달라는 연락을 받고 그를 만났다. 2월에 만났을 때 우리 영화의 경쟁부문 진출을 부탁했던 터라 그와 관련된 소식인 줄 알았으나 만나자마자 부산영화제와 도빌 영화제와의 관계와 교류내용을 집중적으로 물으면서 두달 후에 열리는 칸 영화제에 앞서 좋은 한국영화나 아시아 영화가 부산을 통해 도빌에서 소개되지 않을까 하는데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것이었다.

질 자콥에 이어 2001년 초에 새로 부임한 티에리 프레모(Thiery Fremaux) 집행위원장의 공식명칭은 '아트 디렉터'다. 파리 근교 리용의 뤼미에르 박물관의 관장을 겸임하고 있는 그는 전임자인 질 자콥과는 판이한 성격의 소유자다. 사교적이면서 서민적이다.

그해 2월 그가 부임하자마자 파리의 칸 영화제 사무실에서 질 자콥, 크리스천 존, 피에르 리시앙과 함께 만났다. 아마도 그를 가장 먼저 만난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축하인사를 건네자마자 부산 방문을 요청했다.그는 이미 부산영화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었다.티에리 프레모의 첫 반응은 부산은 꼭 가고 싶지만 내년에나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해 5월 칸영화제에서 만나 다시 한번 부산 방문을 부탁했다. 그는 5월 말 까지는 가부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때마침 6월 초에 주불한국문화원과 프랑스 시네마테크 공동주관으로 임권택 감독의 회고전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나는 만사 제쳐놓고 파리로 달려갔다.임 감독 회고전의 개막행사가 끝난 다음날 티에리 프레모와 조찬을 함께 했고 임 감독도 같이 한 그 자리에서 그는 그 해 가을 부산을 찾겠다고 확약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역시 2001년에 새로 부임한 디이터 코슬릭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 그리고 2002년 여름 새로 취임해서 첫 영화제를 끝낸 모리츠 데 하델른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세계 3대 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원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하는 초유의 쾌거가 이루어 진 것이다.

칸 영화제 스태프 중에는 빼 놓을 수 없는 크리스천 존(Christian Jeune)이 있다.그는 영화담당 부서의 책임자(Director, Film Department)다. 젊고 미남이며 매우 친절하고 순박한 성품의 사나이다.199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질 자콥 위원장이 한국영화공로상을 대리수상케 하기 위해 그를 부산에 보내면서 서로 친해졌다.

칸 영화제 사무실에 들리면 그는 항상 질 자콥의 방문을 지키는 비서실장의 역할을 하면서 본선에 올라갈 영화를 선정하는 작업에서 필름에 대한 수송, 시사일정 마련 등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실무 책임자다. 일년에 대 여섯 번은 다른 영화제에서 만난다. 이제는 부산영화제에 필요한 사항을 그를 통해 해결한다.

칸 영화제의 분신과도 같은 사람에 피에르 리시앙(Pierre Rissient)이 있다. 뚱보에 대머리이며 전형적인 프랑스 사람이다.나비넥타이를 요구하는 칸 영화제의 엄격한 의전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티셔츠에 모자를 쓰고 개, 폐막식 조차도 들락거린다.성깔이 불같아서 조금만 비위에 맞지 않으면 어디서나 호통을 치고 고함을 지른다.

베니스의 엑셀셔 호텔이건, 서울의 신라호텔이건 때와 장소,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직원들에게 호통친다. 프랑스 누벨 바그 시절 유명감독의 조감독으로 시작한 오랜 영화계 편력으로 그만큼 영화계의 가십거리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는 칸 영화제의 직원도, 스태프도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프랑스 최대의 영화배급회사 중의 하나인 파테영화사의 간부로 있다가 최근에 사직하고 개인사무실을 개설했다.

다만 칸과 관련이 있다면 피에르 리시앙은 질 자콥과는 오랜 기간 절친한 친구사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질 자콥방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조언도 하고 자문에 응하기도 한다. 그는 한국영화에 애정을 갖고 한국에 수시로 방문해서 영화도 보고 칸 영화제에 갈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하며 또 더러는 한국영화의 프랑스어 자막을 맡아 처리하기도 한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경쟁부문에 뽑히고, <취화선>이 감독상을 수상하는 데 그의 영향력이 적지않게 작용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칸 선정위원을 지낸 평론가 막스 테시에가 일본통, 낭트영화제 집행위원장이면서 피에르와 가까운 알랭 잘라도가 중국통, 토니 레인즈 역시 중국통이라면 피에르는 필리핀이나 대만, 그리고 한국통으로 자부하고 있는 것이다.

술을 전혀 못하는대신 녹차를 즐겨 들고 당뇨 때문에 늘 약을 가지고 다니는 그는, 그러나 그 괴팍한 성격 때문에 적도 많다. 한국 영화에 관한한, 권위자로 행동하고 싶어해서 심지어 원로 감독의 영화편집에까지 참견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브로커라고 폄하하는 시각도 일부 없지 않지만, 선의로 해석하면 한국 영화에 깊은 애정을 가진 프랑스 기인이라고 할 수 있다.

- '프리미어' 5월호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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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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