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5월 3일 No. 738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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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타임스'의 어제와 오늘 / 5월 3일


梁平의 '그 해 오늘은'
프레시안 2003-05-03


신문시장의 개혁을 둘러싼 요즘의 논쟁은 어지럽다. 큰 신문사들이 '언론자유'를 합창하는 것이 5공 시대의 뉴스 필름을 보는 기분이어서만은 아니다. 막상 언론자유가 군화 밑에 깔리던 그 시절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던 신문사들이 앞장 서 언론자유를 말해서다.

그 '자유'와 함께 신문시장의 '자율'이라는 합창도 그렇다. 역사가 20세기의 케인즈나 19세기의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넘어 18세기로 되돌아가 아담 스미스가 서울 시내를 배회하는 것만 같다.

걱정스러운 것은 그것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기업이나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본이 언론시장을 독점하여 국론도 독점한다는 비명이 지구촌 도처에서 들려 오고 있다. 이라크 전쟁도 그 무대감독은 과점언론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과점이라는 문제를 떠나 시장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언론의 상황도 숨막힌다. 1966년 오늘 런던 타임스가 1면에 전면광고를 싣던 전통을 바꾸어 기사를 실은 것도 그런 것이다. 대영제국의 위세가 한창이던 1785년에 창간된 이 신문의 콧대는 아직도 '런던 타임스'가 아니라 '더 타임스'라고 하는 제호에서 비치고 있으나 그 신문도 1면에 광고만 실어서는 기사를 싣는 다른 신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낼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하찮은 사건일 수도 있다. 그 때는 이미 영국이 대영제국이 아닌 보통 유럽국가가 됐듯 런던 타임스도 세계의 '세론'을 이끌 수는 없어 '더 타임스'라고 하면 자칫 '뉴욕 타임스'를 떠올릴 판이었다. 그런 마당에 지난날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몰락한 양반의 오기로 비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넬슨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하거나 1ㆍ2차 대전에서 런던이 공습을 당해도 지켜온 전통이 돈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안쓰럽기에 앞서 걱정스럽다. 그것은 나폴레옹이나 히틀러보다 무서운 맘몬(Mammonㆍ황금의 신)이 제4부의 권력자로 나선 것이어서다. 그리고 하느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성경말씀처럼 언론은 맘몬과 시대의 양심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하니 갈수록 암담하다.

더 타임스는 1면 광고의 전통을 버리고도 시장경쟁에서 뒤쳐져 15년 뒤인 1981년에는 호주 태생 언론재벌 머독의 손에 들어간다. '지구촌 정보통신부 장관'이자 '비도덕적 악덕 자본가'인 머독이 차지한 더 타임스의 처지는 뻔한 것이었다. 한때 세계적 정론지였던 더 타임스는 벌거벗은 여인의 사진을 표지에 내세워 3백만부를 팔아먹는 '선'을 비롯한 머독의 영국언론군단의 한 단위부대로 편입된 것이다.

노조가 신문의 논조를 감시하던 전통은 사라졌고 머독의 상업주의에 반발하는 기자들은 지금도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더 타임스의 변신은 뉴 밀레니엄 맞이로 흥분했던 지난 세기말에도 드러났다. 광고주들의 상업주의에 밀려 모든 신문들은 뉴 밀레니엄이 2001년에 시작된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2000년에 시작된다는 식으로 묵인했고 더 타임스도 그 하나였다. 그 더 타임스가 2백년 전인 1799년 12월 26일자에는 광고주들의 압력을 물리치고 '19세기는 1801년 1월 1일부터 시작된다'고 썼었다.

물론 더 타임스가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도 같은 머독 소유의 '선'은 전쟁을 부추겼으나 더 타임스는 지난 1월 15일자에 '미국은 미쳤다'고 썼다. 그 전통을 찬양하면서도 지켜줄 수 없는 것이 '보이지 않은 신'인 맘몬이 지배하는 신문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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