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5월 1일 No. 734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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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곧 기회다

"인간의 눈은 흰 부분과 검은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검은 부분을 통해서만 보게 되어 있다. 신은 왜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까?" 유대인의 탈무드에 실려 있는 수수께끼다. "인생은 어두운 것을 통해서 밝은 것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가 해답이다.

인생에는 어둠과 밝음이 함께 있다. 사람은 이 가운데 밝음만 원하나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이치다. 그러므로 위기, 실패 등을 인정하고 이에 맞서 살아가야 한다는 유대인의 사고방식과 지혜가 여기에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민족의 실패나 굴욕, 패배를 그냥 과거 속에 묻어 두는 것이 아니라 기념까지 하는 것이 유대인 특징이다. 실패에는 성공의 씨앗이 들어 있다는 신념의 표출이다.

이스라엘 역사가 이를 입증한다. 밖으로 적대적인 이웃들과 생존을 걸고 싸우며 안으로는 좁고 척박한 땅에 많은 인구를 가진 이스라엘은 어느 것 하나 유리한 점이 없다. 그러나 바로 이를 역이용, 하이테크산업에 집중하고 세계정상의 정보기술(IT)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근년에 들어 세계 IT산업이 침체하고 미국 시장이 냉각된데다 아랍국들과의 관계는 더욱 험해져 이스라엘 경제의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각국 언론인들을 초청하여“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 것은 세계적인 차원의 IT산업 위축 때문이지 불안한 정치적 상황 탓이 아니다”며 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고 역설했다. 한술 더 떠 그 위기야말로 유망한 신생기업에 투자하기 좋은 때라고 했다. 위기 때마다 이를 기회로 바꿔온 이스라엘의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이나 기업의 위기 극복방안도 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실패와 위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정확히 그 원인을 찾아내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다.

해열진통제 타이레놀로 유명한 다국적 기업 존슨&존슨은 그런 점에서 교과서적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이 회사가 1970년대에 개발한 타이레놀은 총매출의 7%, 순익의 17%를 차지하는 주력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1982년 시카고에서 타이레놀을 복용한 환자 7명이 사망하면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경찰 조사 결과 타이레놀에 독극물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존슨&존슨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책임 회피나 변명을 하지 않고 미국 전지역의 타이레놀 리콜에 나섰다. 그 비용만도 2억5천만달러에 이르렀다. 그리고 고객의 신뢰회복에 총력을 기울였다. 아울러 3중 안전장치를 갖춘 새 제품을 내 놓고 고객을 안심시켰다. 소비자들도 그 회사의 윤리적 태도에 감동, 전보다 더 깊은 신뢰를 보냈고 타이레놀은 1년만에 진통제 시장 점유율 1위에 복귀했다. 위기를 소비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보면서 처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한때 일본 맥주 시장 점유율 62%를 자랑하던 기린맥주가 아사히 맥주에 공세에 밀려 1989년에는 48.1%까지 내려 갔다. 언론은 연일 기린 맥주의 퇴조를 크게 보도하고 사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모토야마사장은 갖가지 묘책을 생각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내외에서 거론되는 '상식'을 의심해보기 시작했다. 그 중의 하나가 '기린은 판매력이 강하다'였다. 즉 기린의 판매력이 강하지만 아사히가 더욱 강하게 나오기 때문에 밀린다는 것이 회사 위에서부터 아래까지의 생각이었다.

모토야마사장은 바로 이 점을 중시하고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결과 아사히가 강한 것이 아니라 기린 스스로 타성에 젖어 이런 결과를 가져 왔던 것이다. 그는 '기린병' 치유에 나섰다.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에 빠진 판매원과 판매망을 소비자의 편에 서서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그 결과 2년 만에 성공적으로 위기를 탈출했다. 기린맥주 역시 소비자 입장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전화위복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 가전업체로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 이미 상당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하이얼의 경영방식 가운데 '삼역(三易)을 지켜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창의적으로 일하고(변역.變易) 쉽게 일하려 하지 말고(불역. 不易) 명확하게 일하라(간이.簡易)'는 뜻이다.(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세째 것을 易(이)로 발음하므로 삼역이 아니라 '2역1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서 삼경 가운에 하나인 주역의 삼의(三義)인데 이를 오늘에 맞게 고쳐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점술서로 잘못 알고 있는 주역은 만물의 이치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도록 이끈 처세술서이다. 그 책의 세가지 큰 뜻이 바로 삼역으로 처음의 변역은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뜻이다. 다음 불역은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말이다. 즉 눈에 보이는 현상은 변하지만 그 배후에 있는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간이는 '변하게 하는 이치, 원리는 간결하고 쉽다' 는 말이다.

하이얼은 이 원칙이 오늘날의 기업경영에도 적용된다고 보고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평온 속에 변화가 숨어 있다. 변역하는 것이다. 호경기 때 불경기의 싹은 바로 그 속에서 자라고 있으며, 개인이나 기업이 잘 나갈 때 위기도 그 옆에 조용히 엎드려 있는 것이다.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자만과 고정관념에 붙잡혀 있으면 위험과 재앙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기린맥주가 이 점에 유의했다면 그런 위기를 맞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가장 좋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위험의 냄새를 빨리 찾아내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가뭄에 도랑 친다,는 속담처럼 비가 장기간 오지 않을 때 홍수를 미리 걱정하는 지혜를 지녀야 한다.

다음 아무리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불역이다. 인간의 본능, 우주의 운행 법칙 등이 그것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바로 그곳으로 접근, 풀어나가야 한다. 기린맥주, 존슨&존슨이 소비자입장으로 관점을 바꿔 해결한 것이 그것이다. 소비자 만족이 절대 변할 수 없는 원리임을 그들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세째 만물을 변화시키는 법칙, 이치는 간결하고 쉽다. 즉 쉽고 가까운 곳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으므로 멀고 어려운 곳에서 찾으려 헤맬 필요가 없다. 이것을 파악하고 나면 나머지 해결의 문은 거의 열린 거나 마찬가지이다.

도산 위기에 놓인 일본의 닛산을 살려놓은 카를로스 곤사장도 그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사물의 이치는 간단하다"고 대답했다. 문제를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경영학 입문서의 내용들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를 어떻게 실천했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것이다.

유대인의 수수께끼처럼 인생에는 반드시 어두운 부분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모든 만물의 변화 속에 잠복해 있는 위기의 동태를 항시 감지하고 있어야 한다. 타성이나 고정관념은 이런 감시의 눈을 무디게 하므로 늘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위험이 닥치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객관적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 결점을 고치는 데는 인간이기 때문에 넘기 어려운 한계가 있지만 최대한 노력하면 어느 정도 길은 뚫리게 되어 있다. 건강회복을 위한 수술치고 아프지 않은 것이 없듯이 자신의 객관화는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국가, 기업들은 이처럼 평범한 진리를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실천한 것이다. 전화위복의 지혜는 그 원리를 찾는데서 시작되고 강력한 행동에서 마무리 된다. 어느 한쪽에라도 틈이 있으면 그건 지혜가 아니다. 개인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삼성생명 사보 4월호(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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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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