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4월 30일 No. 733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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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섭의 세상엿보기(8)
술 예절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을 꺾어 셈하며 다함 없이 먹세 그려…' 사설시조 '장진주사(將進酒辭)'를 쓴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꽃을 꺾어 술잔을 셈하며 술을 마실 정도로 멋과 풍류를 즐긴 선비다. 술 마실 핑계를 찾는 것이 술꾼들의 속성이듯 송강 또한 '기주유사(嗜酒有四)'라 하여 술을 즐기는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기쁠 때 술을 마시고, 슬퍼서도 술을 마신다. 먼데서 벗이 찾아오면 어찌 아니 마실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 다음 이유다. 권하는 잔을 뿌리칠 수 없어 마신다는 네 번째 이유에서 풍류객의 멋을 엿볼 수 있다.

옛 선비들의 술 풍류가 어찌 송강 뿐이겠는가. 칼과 거문고로 일세를 풍미한 백호 임제는 황진이 묘를 찾아가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한다'고 읊었다. 주상 자리를 헌신짝처럼 버린 풍류호걸 양녕대군, 죽장(竹杖)에 삿갓 쓰고 방방곡곡을 떠돈 방랑시인 김삿갓, 판소리 풍류가객 신재효 등은 허명과 사익을 멀리 한 풍류객들이었다. 예술인들에게 술은 서정적 풍류생활의 동반자다. 도도해진 주흥(酒興)으로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채근담에는 '꽃은 반만 피었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 술은 적당히 취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적당히'라는 양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상태다. 적당히 즐겁게 마시는 술은 생활의 윤활유 구실을 할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좋다. 윤선도는 술을 마시되 덕이 없으면 난(亂)하고, 주흥을 즐기되 예를 지키지 않으면 잡(雜)되기 쉬워 술을 마실 때에는 덕과 예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은 선인들의 격조 높은 음주문화는 찾아보기 드물고 폭음과 주사(酒邪)가 예사다. 최근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가 발표한 음주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자 직장인의 40.5%는 주 1회 이상 폭음하며, 7.3%는 거의 매일 폭음할 정도로 술에 절여 산다. 국민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세계 2위에 간질환 사망률은 세계 1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5배 이상 술을 마셔되니 알코올 중독자가 늘고 술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연간 21조원에 이른다.

폭탄주를 돌리고 '위하여'를 외치며 술을 마셔되는 기성세대의 무절제한 음주행태를 대학생들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몇 년 사이 신입생 환영회나 동아리모임에서 음주로 인해 숨지는 학생들이 잇따라 발생하는 등 대학생들의 음주문화가 지성을 상실한 채 비틀거린다.

대학에 '술 강좌' 개설이 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니 바람직한 현상이다. 술과 친숙해지기 시작할 시기에 주도(酒道)를 제대로 배워 덕과 예를 갖췄으면 한다. 술 예절은 글로벌시대의 교양 필수다.

- <담배인삼신문 4월25일자> (2003.04)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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