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4월 22일 No. 729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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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섭의 세상엿보기(5) /
생가 복원

국악 보다 서양음악이 더 익숙해진 요즘, 판소리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얼마 전 11 살배기 판소리 신동이 장장 9시간 20분 동안 판소리를 불러 화제다. 초등학교 4학년인 김주리양은 3년 전 8살 때도 '수궁가'를 완창하여 천부적인 재질을 보여주었다. 이번엔 심청가와 수궁가를 묶어서 불러 최연소·최장시간 신기록으로 세계기네스북에도 오르게 됐다니 장하고 놀랍다. 판소리 꿈나무들이 천재성을 갈고 다듬어 큰 소리꾼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차(茶)고을 전남 보성은 판소리 강산제의 비조인 박유전(1835∼1906) 명창이 머물던 곳이다. 강산제는 대원군이 박유전의 소리를 듣고 "네가 제일 강산이다"고 극찬한데서 유래됐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가 살았던 보성 강산리 지명에서 전래됐다는 설도 있다. 강산제는 박유전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소리 중에서 보성 지방에 전승된 소리로 '보성소리'라고도 한다. 그 소리는 정재근으로 이어졌고, 송계(松溪) 정응민 명창이 물러 받았다. 정재근은 정응민의 큰 아버지다. 강산제의 특징은 서편제의 구성짐과 동편제의 웅건함과 중고제의 웅심깊은 맛을 가미한 섬세한 소리다.

송계의 생가는 차밭이 밀집해 있는 보성 봇재에서 멀지 않은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에 위치해 있다. 1896년에 태어난 송계는 생의 대부분을 고향에 머물며 성우향 성창순 조상현 등 쟁쟁한 명창들을 양성 한 뒤 1964년 소리인생을 접었다. 송계의 아들 정권진과 손자 정회석으로 이어지는 판소리의 대물림도 흔치 않은 소리가계(家系)다.

1994년 판소리 답사기행 취재를 위해 조상현 명창과 함께 송계의 생가를 찾았을 땐 집터에 북 모양을 본떠 만든 '정응민 예적비'와 초당뿐이었다. 조 명창은 소리를 배우던 당시를 회고하며 "이 자리가 본 채, 저쪽이 사랑채, 부엌옆에 디딜방아, 정낭(화장실)은 대문 오른쪽 끝에 있었다"며 송계의 생가를 그림 그리듯 자세히 설명했다.

9년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가 복원해놓은 송계 선생의 생가를 보고 황당한 느낌을 받았다. 대문에 이르는 자연석 계단과 높은 담장,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덩그렇게 지은 기와집은 조상현 명창이 설명한 생가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 어처구니없다. 민초와 애환을 함께 한 판소리의 분위기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보성군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국비와 군비 8억원을 들여 "장기적 안목에서 효율적 관리를 위해 기와 지붕으로 만들었다"고 밝혔지만 짧은 안목일 뿐 아니라 비문화적 행태다. 지난해 고창 흥덕면에 복원한 고 김소희 명창의 생가도 안집과 헛간 2채를 초가로 옛 집 그대로 지었다. 생가는 원형대로 복원하여 예술인이 살아 온 삶의 체취를 느끼게 하고 업적을 기리는 데 의미가 있다. 원형대로 복원해 놓은 생가에서, 판소리 꿈나무들을 가르치고, 관람객들에게 보성소리를 들려준다면 송계의 삶과 소리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 <담배인삼신문 4월4일자> (2003.04)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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