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4월 10일 No. 72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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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2'


천리포 수목원은 지금 천국이다.앙증맞은 복수초와 노루귀 얼레지 삼지구엽초가 수줍게 꽃망울을 피운 한편에서 수선화와 크로커스 헬레보러스 등 이국적인 초화류가 군락을 이루며 자태를 뽐낸다.한국에만 산다는 천연기념물 미선나무와 히어리 개나리 산수유 생강나무가 각기 다른 농도의 노란색 꽃과 향기로 봄날을 더욱 따스하게 만들고 후박나무 너른 잎새에서는 햇빛이 미끄러져 내린다.

무엇보다 눈부신 것은 꽃등처럼 빛나는 목련이다.백목련 자목련은 물론이고 연분홍 꽃분홍 노란색 목련도 보인다.400여종에 이른다는 각양각색의 목련이 피어나려고 꽃봉오리를 한껏 부풀리며 4월의 수목원을 꿈의 정원으로 만들고 있다.

이 수목원을 설립한 민병갈(미국이름 칼 페리스 밀러·1921∼2002)씨는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에 비유되기도 한다.부피에가 프로방스 지방의 황량한 산에 혼자 묵묵히 나무를 심어서 온갖 새와 짐승과 사람이 깃들어 사는 낙원으로 변하게 했듯이 민씨도 천리포의 척박한 야산 18만평을 홀로 꿈의 정원으로 일구어 냈기 때문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피츠턴에서 태어나 2차대전 때 미군장교로 한국에 온 그는 57년 동안 이땅에 살며 한국사랑과 나무사랑에 헌신했다.그가 일군 천리포 수목원에는 1만종에 가까운 나무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다.특히 외국에서 들여 온 수종은 국립임업시험연구원의 보유 규모를 훨씬 능가할 정도라고 한다.국제수목협회로부터 지난 2000년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이라는 인증패를 받기도 했는데 아시아 최초,세계 12번째의 인증패였다.세계 최다 목련 수집 수목원으로서 세계목련학회,호랑가시나무학회,국제수목협회 총회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스스로 ‘전생에 한국인이었다.’고 믿었던 그는 1979년 한국인으로 귀화했다.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을 정도였고 밤참으로 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면서 수입품인 커피는 너무 비싸다고 자주 마시지 않았다.개발연대에 헐리는 한옥들이 아까워 수목원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독신이었던 그는 한국은행과 증권사 등에서 일하며 평생 번 돈을 쏟아부어 만든 수목원을 공익법인화하고 자신이 살던 집을 포함한 개인재산을 모두 수목원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지난해 봄 타계했다.

엊그제 8일은 그의 1주기였다.수목원에서 열린 추모행사에는 국내외에서 100여명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다.추모객들은 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토로했다.또 이날 제막된 묘비의 묘비명처럼 “푸른 눈의 영원한 한국인 민병갈이 남긴 천리포 수목원은 앞으로 천년을 더 푸르러 갈 것이다.”라고 믿으며 그렇게 되도록 뒷받침할 것을 한마음으로 다짐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생전의 그를 만나지 못하고 뒤늦게 천리포 수목원을 찾은 나는 이곳에서 장 지오노의 소설이 현실화됐음을 느꼈다.공교롭게도 소설속의 주인공 부피에 노인처럼 천리포의 ‘나무 할아버지’도 꼬박 32년 동안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30년이란 세월 동안 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이 수목원도 눈부시게 보여준다.

마음이 스산해질 때 나는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었다.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 어지러울 때,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들 때도 이 책을 집어 들었다.그러나 이제는 천리포 수목원,‘나무를 심은 사람 2’를 찾으면 될 듯싶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 아카데미상 단편상을 받은 프레데릭 바크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자신을 바쳐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나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큰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천리포 수목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고단한 삶에 지친 영혼을 위로 받고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찾아가게 될 것 같다.

- 대한매일 2003.04.10

임 영 숙
대한매일 미디어연구소장
http://columnist.org/y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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