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4월 4일 No. 723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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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

근무처 부근 막걸리집 외상거래를 누가 먼저 트느냐로 신입 사원의 능력 일부가 은연중 평가되던 시절이 있었다. 대략 한 세대 전의 이야기다. 이들에게는 학창 시절 자장면집에 가서 돈이 없으면 학생증을 맡기던 추억도 있다. 학생증이 무슨 담보 가치가 있었으랴. 속절없이 주인은 이것을 챙겨 두고 기약 없는 지불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 시절 젊은이들의 신용구매 규모란 고작 이런 정도였다.

전 세대들과 달리 풍요의 시대에 태어나고 자라선지 요즘 젊은이들의 외상은 통이 크다. 통 큰 소비에는 신용카드라는 물건이 한 몫 단단히 한다. 이것만 있으면 외상 먹으면서도 면구스럽기는커녕 당당하기 짝이 없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옛날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외상의 매력은 시대를 초월하여 과소비를 부추겨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다가, 흔히 "카드를 긋는다."고 말하듯 신용카드 사용은 아주 손쉽다. 돈 아쉬울 때는 카드로 빚까지 쉽게 얻을 수 있으니 흡사 도깨비 방망이다.

쓸 때는 도깨비 방망이 같아도 돈 갚을 요량 없이 쓰고 나면 무섭기 짝이 없는 것이 신용카드다. 카드 대출 이자는 은행보다도 훨씬 높고 연체 이자 역시 고율이다. 빚을 빨리 끄지 않으면 눈덩이 구르듯 부담이 커진다. 밀린 카드 빚 갚으려고 강도에다 살인까지 하는 구제불능의 젊은이들까지 자꾸 나오는 판이다.

이달 부산에서는 카드빚을 갚기 위해 열다섯 차례 강도와 절도를 한 20대 3명이 경찰에 잡혔는데 그들이 카드로 지출한 것은 대부분 유흥비였다. 지난달 서울에서는 신용카드 빚 4,500만월을 갚기 위해 옛 직장 사장집에 들어가 사장부인과 아들을 흉기로 찔러 죽이고 돈을 훔쳐 달아난 20대가 체포되었다. 생각해 보자. 이것이 누구 탓인가. 신용카드회사가 책임질 몫도 여기에는 포함돼 있다. 만일 신용카드회사가 결제 능력 없는 사람에게 카드를 발급하지 않았더라면 강도나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월에 283만여명으로 집계된 신용불량자가 4월이면 300만명으로 늘어나리라고 하는데 그 80%가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라고 한다. 2월 집계를 보면 20대 이하가 54만명을 넘으며 거의 모두 신용카드 관련자들이다. 국민 300만명이 신용불량자라는 사실, 또 그 5분의1 가량이 20대라는 사실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빚을 받아내지 못하는 신용카드 회사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개인과 가정에 파탄이 오고 국가 경제에도 엄청난 악영향이 미친다. 상황이 절박해지자 대통령이 개인워크아웃제 확대 실시를 지시하기에 이른다. 신용카드 회사는 연회비와 수수료 따위를 인상하려 한다.

신용카드회사들의 경영난은 자업자득이다. 카드 남발의 벌을 받게 된 것이다. 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신규 가입을 권유하고, 땡전 한푼 벌지 않는 젊은이들에게까지 발급할 때부터 사태는 예견된 것이었다. 신용을 따져보지 않고 카드를 내 주는 회사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개인워크아웃과 연회비 인상 등은 성실한 사람들의 돈으로 불성실한 사람(일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에게 혜택을 준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안 갚고 버티면 언젠가는 해결되리라는 생각을 지니게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 사람이 계속 나오고 연체자가 자꾸 늘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상자 선정은 꼼꼼히 해야 한다. 이를테면, 유흥비로 흥청망청 써 버린 사람들까지 도와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탕아의 구제까지 나라가 할 수는 없다.

내일의 조국을 짊어질 젊은이들의 낭비벽이 심해지고 신용이 박탈되는 것은 가장 우려되는 사태다. 앞으로 카드회사가 20대 신용불량자 양산을 조장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 담배인삼신문 <시론> 200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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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칼럼니스트, 대진대학교 통일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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