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3월 31일 No. 721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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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섭의 세상 엿보기(4) /
부성애(父性愛)

지구상에서 가장 부성애가 강한 생물이 가시고기다. 암놈이 알을 낳고 떠나면 수놈은 보름정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지느러미를 움직여 맑은 산소를 공급해 부화시킨다. 사투를 다해 외부의 침입을 막는다. 새끼가 태어나면 새끼들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죽는다. 죽은 아비의 살을 뜯어먹고 자란 새끼들은 여름이 되면 긴 여행을 떠난다. 이듬해 봄, 아비가 그랬듯이 가시고기는 그 곳으로 돌아와 부성애의 역사를 되풀이한다.

갈수록 가장의 권위는 떨어지고 아버지의 존재는 약해지고 있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여전히 뜨겁다. 최근 첸 카이거 감독의 '투게더'를 보면서 끈끈한 부성애(父性愛)를 새삼 확인한다. 시골마을 요리사인 리우 청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지만 삶의 희망인 열 세 살의 아들이 있다. 바이올린 신동인 샤오천은 나가는 대회마다 1등이다. 리우 청은 아들을 출세시키려고 베이징(北京)으로 상경한다. 자식 농사에 욕심내는 것은 어느 나라 아버지나 마찬가지다. 레슨비를 벌기 위해 중국집 배달원, 고층빌딩 창문 닦기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샤오천의 첫 레슨담당은 지앙 교수. 그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살지만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은둔자다. 하지만 '즐거울 때 연주하라'며 음악에 감정을 불어넣는다. 아들에게 명예와 돈을 안겨주고 싶은 리우 청은 두 번째로 스타제조기 유 교수에게 아들을 맡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아들간에는 원초적으로 애정과 미움의 양면적 감정이 존재한다. 샤오천의 눈에는 빨간 모자에 꼬질꼬질한 넥타이를 맨 아버지의 모습이 창피하고 부끄럽다. 성장기의 특성일 수 있다. 배금주의와 사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옆집 젊은 여자에게 바이올린을 팔아 코트를 사줌으로써 음악을 버리겠다는 반발과 반항도 보여준다.

아버지는 아들의 유학비를 벌기 위해 낙향을 결심한다. 국제대회가 열리는 날, 아들은 출세의 발판이 될 연주회 참가를 포기하고 베이징 역으로 달려간다. 그 곳에서 아버지를 위해 격정적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눈물을 짜내기 위한 선과 악의 대립, 상투적인 출생의 비밀 등 집중력이 떨어지는 구성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은 가슴 뭉클한 감동이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무엇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희생양인가. 처친 어깨로 가정에 돌아와도 소외당한 듯 외롭다. 인터넷에 붙잡혀 있는 자식들에겐 말 걸기도 어렵다. 고교생 중 22%가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1분 미만'이라는 청소년 백서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60세 이상 노인 중 45%가 자식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을 정도로 부모 자식간의 사이는 멀어지고 있다. 권위적이고 차갑게 느껴지는 아버지일수록 감춰진 속내는 푸근하고 따뜻함을 자식들은 알아주지 못한다. 아들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볼 뿐이다. '훌륭한 아빠가 되자는 모임'은 많아도 '훌륭한 딸·아들이 되려는 모임'은 찾아 볼 수 없으니 아버지들은 씁쓸하다.

- <담배인삼신문 3월28일자> (2003.03.31)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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