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기전 한 전쟁반대 집회에서 열세살 난 소녀가 이렇게 말했다.“저를 한번 보세요.찬찬히 오랫동안.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때,여러분 머리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 올라야 합니다.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그 아이입니다.”
샬롯 앨더브론이라는 이름의 이 미국소녀는 지난 91년 걸프전쟁에서 이라크 어린이들이 겪은 참혹한 불행을 상기시키면서 덧붙여 말했다.자신이 운이 좋다면 91년 바그다드 공습대피소에서 스마트 폭탄에 살해당한 300여명의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죽을 것이고 운이 없다면 천천히 죽어가거나 죽는 대신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외상을 안고 살아갈 것이라고.
‘충격과 공포’작전으로 명명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된지 1주일.이제 우리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그 아이’들을 매일 보고 있다.‘운이 없어’ 그 자리에서 죽지 못한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을.
지난 걸프전 때 한달여 동안 사용했던 것의 두배에 가까운 2천5백여기의 크루즈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이 쏟아 부어졌다는 이번 바그다드 첫날 공습때 부상당한 어린이의 울음소리는 한국의 어머니들에게도 오랫동안 환청으로 남을 듯 싶다.머리 전체를 붕대로 감은채 고통과 공포에 질려 울고 있는 그 아이를 어느 어머니가 무심히 볼 수 있었겠는가.
이라크 남부도시 바스라에 대한 공습때 다친 후 할아버지 손에 안겨 옮겨지던 소녀의 모습,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식을 잃은 듯 축 쳐진 그 소녀의 초록색 바지를 누더기로 만든 미사일 파편 자국 또한 어찌 쉽게 잊을 수 있겠는가.
어머니 등에 업혀 6·25전쟁을 겪었음에도 어린 시절 나는 오랫동안 전쟁이 일어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악몽을 꾸었다.그 악몽을 대체한 또 다른 악몽,시험 준비를 전혀 안했는데 갑자기 시험을 보게되는 악몽도 이제 까마득히 잊혀져 가는 마당에 이라크 전쟁이 다시 어린시절의 악몽을 일깨워 주고 있다.
모든 전쟁은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그 희생양으로 만든다.전쟁 난민의 80%가 여성과 어린이라는 말도 있다.이라크 전쟁의 민간인 피해자들 역시 그 사회의 가장 힘 없는 사람들이다.피난을 떠날 능력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공습 사이 사이에 생업을 꾸려 가야 하는 이들이 이번 전쟁의 첫번째 희생제물이 됐다.
그러고 보면 여성들이 반전 운동에 앞장 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세계YWCA는 지난해 이미 “UN의 재가가 있든지 없든지 이라크에 대한 어떤 군사적 공격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고 선언했다.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국내 반전운동에도 여성들이 적극 앞장서고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아무리 서울에서 반전데모를 벌여도 미국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을 수는 없다.미국에서 보면 우리의 반전운동은 ‘꼴값’정도에 그칠것이다.전쟁에는 선과 악이 없다.이번 전쟁을 지지하는 나라도 반대하는 나라도 ‘국익’에 따른 선택을 했을 뿐이다.”고.
그러나 외교적 현실이 어떻든 우리 어머니들이 이 더러운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그리고 이라크 어린이들 보다 나을 것 없는 북한의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유니세프는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지난 19일 ‘오늘의 이라크 어린이 상황’을 발표했다.이라크 인구의 절반 가량이 15세 미만의 어린이고 그중 100만명이 넘는 어린이가 영양실조 상태이며 5세 미만 어린이의 4분지 1이 발육부진 상태라는 것이었다.유니세프 이라크 사무소 카렐 드루이 대표는 “전쟁은 이미 충분히 비참한 상황을 극도로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전운동이 길거리의 이벤트에서 더 나아가 그 아이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구호활동으로까지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나올지 짐작해 보기도 두려운 ‘바그다드 시가전’이라는 재앙이 임박한 상황이다.
- 대한매일 2003.03.27
임 영 숙
대한매일 미디어연구소장
http://columnist.org/y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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