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3월 21일 No. 71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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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의 세상 엿보기(3) 부부싸움

우리나라 부부들은 부부싸움을 한해 평균 5회 정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의 면접조사 결과 기혼자의 76.3%가 1년간 부부싸움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부부간의 가벼운 말다툼도 부부싸움의 범주에 속하는 것인지 기준은 애매하지만 부부싸움 횟수는 9년 전에 비해 다소 늘어났다. 부부싸움은 일상생활의 사소한 문제로 다투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경제적 문제, 자녀문제, 시댁·처가와의 관계가 그 다음 이유들이다.

부부싸움은 집안 일로 들어내기를 꺼려하는 것이 통례인 데, 요즘은 갈등의 골이 깊어진 부부가 나란히 TV 생방송 프로에 출연하여 공개적으로 진단 받는 것을 보니 용기가 대단하다. 그렇지만 부부문제를 그런 방법으로 푸는 것이 과연 근본치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구심도 든다.

흔히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격하면 폭력으로 이어지고 툭하면 이혼이다. 고추당초보다 맵다는 시집살이를 하던 시절엔 여성들이 이혼하고 살 자신이 없어 꾹 눌러 참았다. 소박맞았다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도 두렵고, 자식들도 걸림돌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향상과 함께 경제적 독립이 가능해졌고, 재산분할청구 등이 쉬워지면서 쉽게 헤어진다. 우리나라 이혼율은 세계 3위로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여성부 제1회 평등부부상을 받은 30대 부부는 부부싸움을 할 때 원칙을 정해놓고 싸운다니 역시 평등부부답다. '옛날 잘못 들춰내지 않기, 상대방 성격 물고늘어지지 않기, 한 번 싸운 일은 재탕하지 않기, 싸움의 원인이 된 문제만 놓고 싸우기로 합의' 했으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부부싸움도 싸움인 만큼 룰이 필요하다. 과격해지겠다 싶으면 '타임아웃'을 선언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야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화가 치솟아도 "우리 이혼해" 등 막가파식 발언은 금물이다. 신혼 초기 상대방 기를 꺾으려는 샅바싸움은 더욱 무모하다. 연령이 낮을수록 부부싸움을 자주 한다는 통계는 배우자에 대한 이해력 부족과 자제력이 약한 탓이다.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부부일수록 겉으론 화목해 보이지만 속으론 곪아간다. 살아가면서 크든 작든 생기기 마련인 갈등과 불만을 꾹꾹 눌러 참으려니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부부 동반 모임에 참석하여 다정한 듯 유난을 떠는 부부일수록 가정에서는 무관심하고 겉도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본다. '행복해 죽겠다'는 듯 금실을 과시하던 스타들의 파경에서도 잉꼬부부의 허상을 읽을 수 있다.

부부싸움을 하다보면 문제해결은 실종되고 상처만 남는다. 자녀들의 마음까지 멍들게 한다. 그렇다고 부부싸움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제를 피함으로써 해결을 포기하는 것보다 싸우는 게 나은 까닭은 부부싸움이 의사소통의 한 형태이며, 문제 해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 <담배인삼신문 3월21일자> (2003.03)

이규섭

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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