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3월 12일 No. 708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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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그해오늘은] '냉전 독트린'



1947년 오늘(3월12일) 트루먼이 의회에서 발표한 '트루먼 독트린'은 유명한 독트린은 아니다.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원조를 촉구한 이 독트린은 그보다 한세기 이상 오래된 '먼로 독트린'(1823년)보다도 귀에 설다. '먼로주의'는 있어도 '트루먼주의'가 없는 것도 그렇다.그것은 트루먼의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루스벨트가 죽자 부통령으로서 빈 자리를 메우 듯 대통령이 된데다 20세기의 가장 인기 있는 전임자와는 달리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었다.그럼에도 트루먼 독트린은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트루먼이 이를 발표하는 장면이 처음으로 TV중계됐다는 말이 아니다.

미국이 2차대전의 우방이던 소련을 봉쇄하려는 이 독트린으로 냉전시대가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아니다.미국이 반쪽이나마 세계(서방)의 일을 '걱정'하기 시작함으로써 '팍스 아메리카나'가 태동한 것이다. 미국이 유럽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을 테니 유럽도 미주에서 손떼라는 먼로주의의 고립주의를 벗어난 것이다.최근 일본의 이마가와 에이치 교수(소카대)가 내논 '미국의 패권주의 이대로 갈 것인가'도 패권주의의 기점을 트루먼 독트린으로 잡고 있다.

당시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한 한반도는 이 독트린의 최전선이었던 셈이다. 정부 수립 1년 전이던 당시 남한만의 단정 수립이니 반대니 하는 논쟁도 미소의 대리전쟁이었다.

그 끝에 단정이 수립된 것과 트루먼 독트린의 관계는 알 수 없으나, 이 독트린은 세계의 적화를 막은 공신으로 미화돼왔다.그러나 최근에는 소련의 위협을 과장해서 냉전의 원인이 됐다는 비난도 있다. 당시 소련은 세계를 적화할 의사도 힘도 없었다는 주장이 최근 소련의 기밀문서가 공개됨으로써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 세계일보 200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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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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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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