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3월 11일 No. 707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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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높은 취업 눈높이 낮추자

백수들끼리 취업 정보도 나누고 넋두리도 하면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나누는 인터넷 '백수 사이트'가 최근 문을 열었다. 취업난 시대를 반영하는 이색사이트다. 한 네티즌이 '백수 하면서 알게 된 열 가지'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 눈길을 끈다.

"공사장 막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착각', 현실과 가상을 구분 못하는 '혼돈', 나에 대한 자신감 '상실', 세상에 나말고 백수도 많은 데…라는 위험한 '안심', 다른 사람들이 내가 백수라는 걸 아는 듯한 '공포', 이력서 하나 넣고 연락이 올 거라 믿는 '자만', 누군가 나를 백수라 무시할 때 느껴지는 '분노' 등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착각과 혼돈, 상실감과 분노 속에서도 그 네티즌은 "마음 속에 그리며 꿈꾸는 '희망'은 어두운 내 현실을 극복하도록 하는 등불과 같다"며 가슴에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백수란 '백수건달(白手乾達)'에서 나온 말이다. 빈둥거린다는 뉘앙스가 강한 '건달'을 뺀 말이 '백수'다. 백수는 잠시 일거리가 없는 '하얀 손'이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 또 다른 사이트 '백수 닷컴'은 '정해지지 않은 내일이지만 꿈꾸며 사는 것이 백수다'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직장을 잡는 데 몇 년씩 세월을 보내는 취업 장수생(長修生)들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장기백수(長期白手)'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들 중에도 첫 직장을 잡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11개월이었으며, 2년 이상 걸린 경우도 15%에 달했다. 백수의 장기화는 '연령 제한'에 걸려 시험 칠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실정이다.

'취업장수' 어깨 처진 청년들

사정이 이렇다보니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이나 어렵다. 부산 명문대를 졸업한 어떤 여성은 토익 850점대에, 정보처리기사 등 5개의 자격증을 소지하고도 기업체 공채에 80번 이상 떨어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서울대를 나온 30대 남자는 3년차 장수생으로 개인과외를 하며 취업의 문턱을 넘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다.

대졸 미취업자들의 '탈 백수'작전은 눈물겹다. 그들은 직업전문학교에서 전문기술을 배운 뒤 '취업의 꿈'을 이루고 있다. 산업인력공단에서 운영하는 1년 과정 직업전문학교는 수업료·기숙사 등 모든 비용이 무료인데다, 실무능력이 뛰어나 업체에서도 선호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취업난에 더욱 시달리고 있는 지방대 출신들의 취업난 극복 코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대거 환경미화원 선발에 지원했다는 소식은 사회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고급 두뇌들이 적재적소에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일부 기업에서는 석·박사 학위자를 우대는커녕 기피하는 사례까지 생겨 '고학력 수난시대'를 실감케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신분상승을 위한 보증수표로 인식됐던 사법고시 합격자도 취업을 걱정해야하는 시대가 됐다. 올해 사법연수생 수료자 가운데 상당수가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로펌 등의 채용이 크게 줄어든 데다 기업체나 행정기관에 취업하는 것도 경쟁률이 높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합격만 하면 힘 안들이고 편안한 생활이 보장됐던 사시합격자들도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판국이다.

경력 쌓으면서 재도전하라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구직자들 2명 중 1명 꼴로 소화불량·두통·불면증·탈모 등 취업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도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취업 장수생들이 직장을 잡느라 몇 년씩 쏟아 붓는 비용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엄청난 낭비다.

'탈 백수'를 하려면 직업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눈높이를 낮추는 것도 구직 요령이다. 입사경쟁률이 더 치열해지고 있는 대기업보다는 유망 중소기업을 공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소기업 수는 매출액 500억원 이상 되는 기업체보다 11배 가량 많고, 수시 채용을 하고 있어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린다면 취업문은 의외로 넓다. 기업들도 신규채용보다 경력자를 선호하는 추세인 만큼 일단 경력을 쌓으며 재도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인턴, 계약직이나 파견직으로 취업한 뒤 경력을 쌓아 놓으면 정사원으로 채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력을 바탕으로 다른 회사에 지원할 때도 유리하다. IT는 경력직 채용이 많으므로 다양한 프로젝트 경력을 쌓고 이력서 제출시 프로젝트 기술서를 별도로 작성하는 등 객관적 능력을 보여줄 수도 있다.

중동정세 불안속에 유가는 뜀박질하고, 경기침체에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기업들의 투자도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취업난은 심화되고 있다. 실업문제는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이다. 그 중에서도 고학력 실업자의 과다적체현상은 시급히 해소돼야 할 과제다. 취업의 문턱을 넘기 위해 취업 사이트를 누비고, 이력서를 쓰고 있는 '백수'들이여, 힘냅시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기 마련이다.

- <저널 뉴 코리아 3월호> (2003.03)

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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