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3월 7일 No. 704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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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 일 처럼 생각되지만,5년전 국제통화기금 체제의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겨울에 살던 집을 팔아야 했다.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불어 닥쳤던 불운이 내게도 닥쳐왔던 것이다.‘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던’ 그 불운은 내 마음을 각박하게 만들었다.그때 스페인의 한 언론인이 엮은 책 마더 테레사의 ‘말씀’을 읽었다.

마더 테레사는 서른 여덟의 나이에 세계 최악의 빈민가로 불리는 인도 캘커타의 슬럼가에 들어가 반세기 동안 나환자,무의탁 노인,고아등 버림 받은 모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아 노벨평화상(1979년)등 수많은 상을 받고 생전에 이미 ‘살아 있는 성녀’로 추앙 받았던 가톨릭 수녀다.

생명이 불꽃이 사그라지던 순간까지도 “나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두십시오”하며 마지막까지 자신이 돌보던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이 대접받기 원했던 그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수백명의 빈민들이 그가 설립한 캘커타 ‘사랑의 선교회’ 앞에 모여 기도를 올렸다.그 기도의 대열에는 기독교도와 힌두교도,회교도,시크교도까지 함께 했다.

무소유와 나눔의 정신을 아름답게 실천한 마더 데레사의 생애만큼 그의 ‘말씀’도 아름다웠다.특히 마더 테레사의 도움을 받은 한 가난한 어머니의 이야기는,살던 집을 팔고 가난해졌다는 생각으로 각박해졌던 내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어느날 저녁,어떤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여덟 자녀를 둔 한 힌두교인 가정에서 며칠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주리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들에겐 먹을 게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쌀을 가지고 그 집으로 갔습니다.그들은 몹시 허기져 보였고 아이들의 눈은 툭 불거져 나와 있더군요.말할 수 없이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쌀을 건네자 아이들의 어머니는 그것을 반으로 나누어 가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잠시 후에 그녀가 돌아오자 나는 어디에 갔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짤막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들 역시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들’이란 식구 수가 같은 옆집의 이슬람교인들이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굶주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또 자신의 쌀을 나눌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리고 자기도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 얼마 되지 않지만 가진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어머니의 행복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날 저녁에는 쌀을 더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대신 다음날 조금 더 가지고 갔습니다.>

마더 데레사의 ‘말씀’ 가운데는 또 이런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어느 늦은 저녁,아마 열 시쯤이었을 겁니다.초인종이 울렸습니다.문을 열자 한 사나이가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얼마전에 아주 중요한 상을 받으셨다지요? 그 소식을 듣고 저도 무언가 당신께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받으십시오.오늘 제가 구걸한 돈입니다”

그것은 아주 적었지만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저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 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첨금이 수백억원이 넘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온 나라가 로또 복권 열풍에 휩싸였던 지난 2월 첫 주에도 가난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다.파출부 직업을 가진 엄마가 딸에게 2천원을 주며 로또 복권을 사라고 말했다.그러나 딸은 그 돈으로 복권을 사는 대신 자신들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자고 말했다.파출부 엄마는 딸이 고지식하고 꿈이 없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대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파출부 엄마가 2천원으로 딸에게 사주고 싶었던 ‘꿈’을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주고 샀다.5년전 주택복권을 한장 샀다가 그 ‘꿈’의 허망함을 일찌기 체험했던 나는 로또 복권을 사지 않았다.그러나 파출부의 딸 처럼 로또 복권을 살 돈으로 나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부끄럽다.

- 삼성SDI 사보 (2003년 2월19일자)

임 영 숙
http://columnist.org/ysi
대한매일 미디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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