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3월 6일 No. 703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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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 [그해오늘은] '大地' 같은 삶



1973년 오늘 '대지'(大地)의 작가 펄 벅이 숨진 것은 타이밍이 좋다.

그의 태생적 고국인 미국과 문학적 고향인 중국이 오래 적대하다가 그 1년 전 닉슨이 '대지'를 밟아 분위기가 달라졌다. 덕택에 그는 두 고향 사람들의 합동장례 같은 것을 받으며 떠난 셈이다.

물론 그것은 펄 벅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와 상관없이 '중국인보다 더 중국적인 미국인'이었다.

그것은 펄 벅이 중국에 관한 소설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는 중국을 들여다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중국화돼 쓴 것이다.

1892년 태어나자마자 선교사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중국인 하녀로부터 '수호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다. 그의 작품에서 서구적 기교보다는 동양적인 소박한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데는 그런 배경이 깔려 있다.

펄 벅은 격동기의 중국이 겪는 아픔을 서구인으로서 거리를 두고 지켜보기보다는 그 속에 몸을 던진 인상이다. '대지'에 나오는 왕룽의 정박아 딸은 바로 그의 외딸이다.

이처럼 인종의 울타리를 넘나드는 그의 문학적 관심은 중국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한국전을 소재로 한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와 함께 한국과 일본의 혼혈아 이야기를 다룬 소설 '새해'와 '숨은 꽃' 등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서 아시아적 미국 작가라고 할 수도 있으나 문학과 행동으로 인류애를 구가한 작가라는 평이 더 어울린다. 펄 벅이 64년 자신의 작가 일생을 통해 벌어들인 700만 달러를 들여 혼혈아들을 위한 펄 벅 인터내셔널을 세운 것은 그의 문학과 인류애가 만난 것이다.

그가 간 지 30년이 지나 부천시가 8월에 펄 벅 기념관을 착공한다니 새삼 반갑다.




- 세계일보 200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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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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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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