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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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그해오늘은]
'바보의 행진' 끝나다
9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나 다섯살에는 어머니를,
열살에는 아버지를 여읜 그의 삶은 하나의 최루성 영화 같은 것이나 하길종은 그런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빼어난 재능과 강력한 비판정신 때문에 바보의 길을 걷는다. UCLA 영화학과에서는
훗날 '스타워즈'를 감독한 조지 루커스를 능가한다는 평을 들었다. 70년 졸업한 그는 UCLA측이
제시한 강사직을 뿌리치고 귀국한다. 갑오농민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태인전투'를 제작하는 등 조국에서
펴려는 구상이 많아서였다. 그러나 돌아온 조국은 답답했고 영화계는 숨이 막혔다. TV의 등장으로
인한 영화계의 불황도 그랬지만 유신에 따른 규제는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영화인들은
국군의 총 한 방에 인민군 서넛이 눕는 반공영화나 '좋아졌네'를 구가하는 새마을 영화 또는 창녀 영화
외에 신통한 선택이 없었다. 75년에 내논 '바보들의 행진'은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히트했지만,
그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검열로 30분의 필름이 잘려나가 "눈알과 입이 없고 팔다리가 하나씩 잘려나간
내 모습을 공개하는 기분"이었다. 그의 재능을 시기하는 영화계 기득권자들의 폭행도 그를 숨막히게
했다. 검열관과 기득권자들에게 폭행당한 그는 폭주로 자신을 폭행했다. 7번째 작품인 '병태와 영자'가
히트하자 "내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고 하던 하길종은 쓰러져 닷새 뒤에 숨진다. 진단은 고혈압에
따른 뇌졸중. 무기질의 그 진단에는 이면의 사연이 없어 생전의 그를 괴롭히던 가위질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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