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2월 26일 No. 609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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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그해오늘은] '禁火都監 21'



세종 8년인 1426년 오늘(2월26일) 금화도감(禁火都監)이 설립된 것을 두고 크게 감탄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측우기나 훈민정음 같은 세종대왕의 업적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그 배경은 차라리 이번 대구 지하철역 참사에 가깝다.

그 무렵 도성에서 자주 일어난 큰불이 실화가 아니라 도둑들이 일부러 방화한 낌새여서 이를 막기 위해 역사상 첫 소방본부를 세운 것이다.

당시도 "도둑×은 시끄러운 판이 좋다"는 말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화재처럼 시끄러운 판은 드물다.

그럼에도 금화도감을 세운 것은 평가할 일이다. 목재가옥이 주축을 이룬 우리나라에서 큰불이 나고 이를 틈타 도둑이 날뛰는 것은 세종때만은 아닐 것이다.

금화도감을 설치한지 4개월만에 도성의 관리를 맡은 수성(修城)도감과 통폐합해 수성금화도감으로 만든 것도 탓할 일은 아니다.

두 관서의 관원들이 평소에는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린 채 민폐만 끼쳐 구조조정을 한 것뿐이다.

금화도감이 한가했다는 것은 쓸모없는 기구를 만들었다기보다 방화의 방지에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방화를 완전히 막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방화범은 시대가 바뀌면 유전변이를 일으키듯 새로운 얼굴로 되살아 난다.

세종의 조선조가 망하고 일제가 되자 새로운 방화범이 생겨난다. 1927년 최서해(崔曙海)가 발표한 '홍염'(紅焰)의 '문서방'이 그렇다.

서간도의 빈농으로 중국인 악질지주 '인가'에게 빚으로 딸을 빼앗긴 그는 인가의 집에 불을 지르고 도끼로 그를 죽인다.

그 뒤로도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밑바닥 인생들의 삶은 답답하고 도둑질을 할 틈새마저 줄어들고 있다.

다만 산업화에 따라 방화를 할 틈새는 넓어지고 그 위력도 과학화와 함께 커지고 있다.


- 세계일보 200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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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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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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