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2월 22일 No. 60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구독신청/해지 | columnist.org |
디지털 시대 변해야 산다

전자제품 생산업체에 근무하던 친구가 20여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정년이 됐거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물러난 것이 아니다.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부지런함으로 영업성과를 올렸고, 자회사의 경영을 책임지는 자리까지 올랐다. 승승장구하던 그의 강력한 적은 경쟁사도 아니고 승진 다툼을 해야하는 임원도 아니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 ×의 컴퓨터 때문"이다.

워드로 간단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PC로 업무현황을 파악하는 정도는 따라잡았다. 단축 키 조작으로 업무를 연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업무시스템의 완전 디지털화로 그는 벽에 부딪쳤다. 온라인을 통해 해외시장 동향서부터 생산라인, 판매까지 챙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디지털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그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아날로그 세대가 디지털 세상의 중심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그 친구뿐만 아니다. 지난 대선을 통해 5060세대들이 겪은 허탈감과 좌절도 '정보의 바다'를 유영하지 못하고 침몰 당한 영향이 크다.

우리는 지금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1000만명을 넘어선 전자정부시대에 살고 있다. 전국 어디에서나 컴퓨터를 켜면 '디지털 정보'가 수돗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가정에서 민원서류를 떼고 외국 유명대학 MBA강좌를 수강하는 것은 기본이 됐다. '디지털 삶(Digital Life)'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국가행정전산망을 비롯해 사이버 금융거래·항공기 예약 등은 보편화 됐다. 그러기에 지난번 인터넷이 한꺼번에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 때는 큰 충격과 함께 불편을 겪었다.

우리는 막강한 힘을 가진 정보, 그 정보에 늘 목말라 하는 디지털 인간이 돼버렸다. 김열규 교수가 '고독한 호모디지털' 저서를 통해 강조한 대목이다. '사이버 공간'을 얻은 대신 '현실 공간'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열린 폐쇄'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머리도 마음도 돌 지경으로 디지털 문화는 우리를 몰아 부친다. 정신 없이 변신을 거듭하는 정보사회의 한 가운데서 길을 잃지 말고, 인터넷과 컴퓨터에 '물려가더라도' 정신을 차리라고 당부한다.

정보화 시대는 인간이 끊임없이 이동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신유목민사회'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단하는 사회학자도 있다. 이제는 잔재만 남은 대가족제도가 무너지고 결속력이 약화된 가정이 해체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글로벌 경쟁시대, 무한 경쟁시대다. 디지털 시대에 살아 남기 위해서는 기업의 체질도 변해야 한다. 생산성과 경쟁력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생산성과 경쟁력의 요체는 사람이다. 기술혁신도 신제품 개발도 결국 사람이 한다. 사람이 경쟁력이다. 쏟아지는 정보를 관리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래서 유능한 인재의 확보와 체계적 관리가 중요하다.

세계 초일류기업인 MS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핵심인재가 없다면 MS는 별볼일 없을 것"이란 신념을 갖고 인재를 발굴했다. 일단 채용 대상에 오르면 삼고초려(三顧草廬)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를 보낼 정도로 적극적이다. 300명 규모의 인재발굴팀을 별도로 운영하고, 필요한 인재가 있다면 아예 그 사람이 속한 회사를 사버리는 경우도 많았다니 놀랍다.

인재발굴팀에 의해 확보된 '직원 후보'는 면접을 통해 채용이 결정된다. 이때 면접은 함께 일할 동료들이 한다. 함께 일할 동료와의 융합 여부가 성공을 좌우한다고 판단해서다. 발굴에서 면접을 거쳐 최종 채용까지 걸리는 시간은 임원 이상의 경우 대략 3∼6개월 정도 걸린다. 매니저는 8주 내외, 사원급은 4∼6주정도 걸린다니 신중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인재를 뽑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적재적소의 배치는 상식이다. 스스로 일할 부서를 선택하게 하는 방법도 바람직하다. 자율성을 보장할 때 능률은 배가된다. 절대로 컴퓨터 소모품 취급하듯 사람을 홀대해서는 안된다. 지식의 공유가 가능해진 디지털 시대엔 독창성과 속도에 따라 조직의 사활이 결정된다. 개인의 개성과 조직의 특성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디지털 세대의 감성과 아날로그 세대의 경험을 아우르는 것도 소중하다.

디지털시대 직장인들의 사고(思考)도 디지털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살고 자기의 몸값을 높일 수 있다. 죽은 지식과 정형화된 생각으로는 경쟁에서이길 수 없다. "할 수 없이 변화를 당하기 전에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GE(제너럴일렉트릭) 신화를 일구어 냈던 잭 웰치의 경고다. 변하지 않으면 '낙동강 오리알'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직장인이다.

상사로부터 신임을 받고, 동료로부터 신뢰를 받고,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때 직장생활은 신바람이 난다. 디지털시대의 가장 큰 함정은 인간미가 사라지고 정이 메말라간다는 것이다. 꿈의 네트워크가 단절의 네트워크가 돼서야 되겠는가. 결박당한 듯 컴퓨터에 구속되지 말고 오프라인 대화의 네트워크도 개설해야 한다. 사내외 정보교류가 이어지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이 중요하다.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과 함께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천에 옮겨보자. 변해야 산다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키워드다.

- <한국야쿠르트 사보 2월호> (2003.02)

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