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2월 17일 No. 602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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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그해오늘은] 제로니모 추장



1909년 오늘 아파치 최후의 전사 제로니모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한때 3000달러의 현상금을 목에 걸고 '역마차' '아파치' 등 수천만 달러어치의 영화 소재를 만들어 냈던 그는 1886년 마일스 장군에게 투항했을 때 이미 추장도 전사도 아니었다.

원명이 '고야플레이'(하품하는 사람)라던 그는 죽기 6년 전 네델란드 개신교회 신자 '제로니모'가 됐다. 그것이 흔한 말로 거듭난 것인지 어떤 역사의 완전한 죽음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럼에도 '제로니모'라는 이름이 유독 거슬리는 것은 슈니츨러의 단편 '눈먼 제로니모와 그의 형'을 떠올리게 해서다.

소설 속의 제로니모는 인디언의 목소리도 들은 적이 없는 유럽의 맹인이다. 그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면 형인 카를로가 돈을 받는다.

어느날 한 손님이 동생에게 형에게 금화를 주었다고 거짓말을 소근대고 동생은 형을 의심한다.

의심에 시달리던 형은 금화를 도둑질해 동생의 손에 쥐어주나 곧 경찰에 끌려 가고 그때서야 평생 형을 의심하던 눈먼 동생은 진실에 눈을 뜬다. "동생은 형을 되찾는다. 아니 '처음으로' 형을 갖는다."고 소설은 끝맺는다.

따라서 형제의 뒷소식은 들을 수 없으나, 인디언들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전사가 아닌 악사로 돈을 구걸한다. 그리고 이를 보며 히죽거리는 얼굴에서는 가엾은 형제를 놀리던 어느 손님을 떠올리게 한다.

그 얼굴은 엉뚱하게 부시 대통령의 얼굴과 오버랩될 수도 있다. 최근 미국에서 인디언 등 소수민족에 대한 입학 특혜를 그가 반대하고 나서서다.

그 바람에 그가 안보보좌관인 흑인 라이스와 갈등을 빚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 데서도 지난날의 전사보다 노예들의 팔자가 더 늘어져 보인다.


- 세계일보 200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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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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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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