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2월 15일 No. 60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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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양띠 이야기

양은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그리 친숙한 동물은 아니다. 떠돌며 살던 유목민과 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었지만, 우리처럼 일정한 곳에 정착해서 농사를 짓던 농경민에게는 소 돼지 닭 같은 가축들이 더 큰 비중을 찾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생활면에서는 양이 매우 깊숙이 들어와 사고(思考)와 관념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복되고 길할 징조를 뜻하는 상서(祥瑞)의 祥은 視(볼 시)와 羊(양 양)이 합쳐서 만들어진 글자다. 즉 사냥을 나가서 양을 보면 재수가 좋다는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재수 없고 불길한 것을 뜻하는 화(禍)는 視와 虎(호랑이 호)가 합쳐진 글자로 역시 사냥 가서 호랑이를 만났을 때의 심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뒤 示 옆의 虎자가 차츰 변해 禍로 되었다. 복을 뜻하는 祿(록)자도 視와 鹿(사슴 록)으로 구성된 글자로 사냥터에서 사슴을 보면 좋다는 의미다.

이처럼 양은 예부터 인간에게 여러 가지 이익과 복을 가져다 주는 길한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羊은 '양 양'외에 '상서로울 양'으로도 통용되며, 예전에 매우 길하고 상서롭다는 말을 大吉羊으로 쓰고 '대길상'으로 읽었듯이 羊으로 쓰고 아예 祥으로 읽는 경우도 더러 있다. 선량한 동물로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양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강력한가를 여기에서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한자 자전에서 羊의 부수를 보면 이를 뒷받침하는 글자를 더 만나게 된다. 善(착할 선)자는 羊과 言(말씀 언)이 합한 것으로 양의 언어 즉 울음소리는 착하다는 뜻이며(口 즉 입구 변에서도 善을 찾을 수 있음), 美(아름다울 미)는 羊+大(큰 대)로 큰 양은 아름답다는 의미다. 보통 동물은 크면 미워지는 법인데 양은 클수록 좋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밖에도 羊 부수에는 義(옳을 의)등 좋은 것을 의미하는 글자가 많이 있다.

사실 양은 무리를 지어 살면서도 이익을 혼자 탐하지 않고 동료들과 우열, 세력 다툼 등을 하지 않아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다. 또 생태적으로 약해 남에게 해를 끼칠 줄 모르는 반면 다른 동물들에게 쫓기거나 희생을 당하므로 유순함과 인내심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양을 온순, 평화, 희망의 상징으로 여겨왔으며 올해처럼 양의 해가 되면 모든 액운은 물러가고 여러 가지 복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크게 가졌다.

서양문명의 정신적 바탕을 이루는 성경에도 양 이야기가 500번 이상 나온다. 예수가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등장하듯이 양은 선량한 사람이나 성직자를 상징해 왔다. 고대 수메르, 이집트,그리스, 로마, 게르만 민족도 양을 신성한 동물로 여겼으며, 유목민족들은 신이 가장 좋아하는 제사용 동물로 삼았다. 고대 로마에서는 양은 미래를 점치는 동물로 활용했다. 따라서 양을 가리켜 인간의 이로움을 위해 희생하고자 태어난 동물로서 높은 경지의 도덕성과 생생한 진실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양이 이처럼 선하고 훌륭한 동물로 칭송을 받는 반면 단점도 없지 않다. 또는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습성도 있다. 성격이 부드러워 좀체 싸우는 일이 없으나 일단 성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多血質)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유순하다 보니 좀 맹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옛날에 이리들이 양떼에게 사절을 보내 이렇게 말했다. " 우리가 왜 늘 적대시해야 하는가. 문제의 원인은 저 악한 개들이다. 그들은 늘 우리만 보면 시끄럽게 짖어 자극한다" 그러면서 이리와 양 사이에 영원한 우정과 평화를 유지하려면 개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리석은 양들은 그 말을 믿고 개들을 내보냈다. 양들을 보호하던 개들이 사라지자마자 이리들이 쳐들어와 양고기 잔치를 벌였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것으로 양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이야기가 이외에도 많다.

그래서 고지식한 양의 성격을 악용,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노회해서 양 한 두 마리를 쫓거나 그를 보호하는 개를 잡으려 하지 않고, 바로 양치는 목동을 노린다. 목동을 끌어내면 개들이 따라 나오고 개가 없어지면 양들은 흩어진다. 그때 무력하기 짝이 없는 양들을 차례로 잡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올해가 양띠라고 해서 모두들 평화와 희망을 말하고 있다. 액운은 말끔히 사라지고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며, 많은 꿈들도 올해는 꼭 이루어지길 기원하는 것이다.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아울러 탐욕과 증오, 지나친 경쟁 등을 자제해서 양들처럼 우애있고 평화스러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반면 우리의 평화와 안정을 노리는 이리떼나 못된 무리가 있다는 것도 항시 기억하여 경계를 늦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우리가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않나, 또는 무작정 온순하기만 하여 남에게 허점을 보이고 있지 않나 등을 늘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 남이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하는 지혜의 길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올바른 방향이다.

- '애경 사보' 1.2월호 (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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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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