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2월 13일 No. 598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구독신청/해지 | columnist.org |
2030감성과 5060경험 아우르자

젊은이는 꿈을 먹고, 늙은이는 추억을 먹으며 산다고 한다. “이 나이에 내가…”를 앞세우거나, “내가 왕년에…”를 입에 달고 좋았던 그 시절만을 생각한다면 이미 늙었다는 증거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이라는 저서를 통해 강조한 말이다. 노화(老化)는 일손을 놓거나 꿈과 희망이 없을 때 주름살을 더욱 깊게 만든다. 카터는 은퇴 후에 오히려 존경받는 삶을 살고 있다. ‘사랑의 집짓기운동“을 펴기 위해 망치를 들고 우리나라에 몇 차례 들렀고, 남북 평화의 사절로 남북을 오갔으며, 지난해 노벨상을 수상했다.

세대 구분은 물리적 나이가 아니라 정신적 젊음과 건강이다. 젊은이라도 꿈이 없다면 늙은이와 다를 바 없고, 늙은이라도 건강한 꿈을 가지고 있다면 젊은이 못지 않다. 어느 기자는 이를 ‘젊은 고물’과 ‘나이든 보물’로 재미있게 비유했다.

‘늙은 퇴물’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쫓아가도 변화의 보폭을 따라잡기 벅찰 정도로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컴퓨터는 펜티엄급으로 업그레이드 됐지만, 아직도 ‘286컴퓨터’ 앞에서 헉헉거리는 꼴이다. 은행창구 앞에서 대기번호를 받아 순서를 기다리기 싫어 인터넷뱅킹을 시작했지만, 이동하면서 결재를 하는 폰뱅킹은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수구세력으로 내몰리는 ‘꼰대들’

5060세대로 상징되는 ‘꼰대’들은 빈궁한 시절에 태어나 전쟁을 겪은 전후세대로 고도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의 눈엔 냉전적 사고와 권위주의 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세대로 비춰지고 있다. 5060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와 급격한 기술 변화의 과정에서 명예퇴직을 강요받는 고통을 겪었다. 문자세대인 그들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21세기 문화코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 또 한번 시련을 겪었으며, 대선 이후 갑자기 늙어버린 느낌에 주도권을 빼앗긴 듯 허탈하다고 한다.

이에 반해 젊은 세대는 개성적이고 자유분방한 가운데 생활을 즐기는 행태로 변하고 있다. 1950년대 미국에선 전후시대의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비트(Beat)’세대가 등장했고, 60,70년대는 반항적인 ‘히피(Hippy)’세대가 청년문화를 주도했다. 이 때만해도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편이었다. 80년대 풍족한 삶과 문화적 여유를 향유하며 등장한 ‘여피족(Yuppy)’에 이어 90년대엔 맞벌이를 하면서 자식을 갖지 않는 ‘딩크(double income no kids)족’이 등장해 어리둥절했다. 최근엔 귀족적인 부르주아와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을 결합한 ‘보보스(Bourgeois와 Bohemian의 합성어)’가 신세대 문화코드로 이어져 용어에 대한 개념조차 이해하기 역부족이다.

세계적 세대 흐름을 타고 우리나라도 70년대에 통기타·청바지족이 청년문화를 주도했다. 80년대는 모래시계 세대로 대변되는 386세대가 독재와 민주화의 갈등 속에서 부상했다. 황금만능 풍조속에 90년대는 오렌지족이 등장했고, 90년대 중반엔 개성과 자유가 특징인 X세대, 후반에는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대변되는 N(네트워크)세대가 젊은이들의 문화코드로 떠올랐다.

변화의 핵으로 떠오른 ‘젊은 그들’

2030문화세대들은 월드컵 응원과 촛불시위를 거쳐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도전하는 정치적 돌풍을 일으켰다. 그래서 지난 대선을 ‘세대 전쟁’이니 ‘세대 혁명’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젊은 그들’의 사고와 주장이 순식간에 사회 전체로 확산되면서 변화의 핵으로 떠오른 것이다.

2030이 인터넷을 통해 시민단체들이 분석한 후보들의 공약자료, 네티즌들의 의견 등 홍수처럼 넘쳐나는 각종 정보를 토대로 여론을 주도한 반면, 대규모 유세전에 익숙해온 5060 ‘꼰대’들은 TV 토론 등 오프라인에 의존하는 것이 고작이어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2030은 정치를 방관하는 세대에서 참여하는 세대로 탈바꿈 됐다. 그들은 분명 변화를 바라고 있다. 정치판도를 바꾸는 위대한 힘을 발휘했다. 그 힘의 원천을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2030의 변화 바람도 5060의 축적된 경험과 조화를 이룰 때 사회발전의 에너지를 높일 수 있다. 5060세대를 방관자로 취급하거나 ‘쉰세대’로 몰아부처서는 사회통합을 이룰 수 없다.

균형있는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세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생각들을 융합해야 한다.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서는 젊은 세대의 역동성과 나이 든 세대의 경륜이 조화를 이루는 접점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5060은 젊은 세대의 참신성과 연대정신을 이해하고, 2030은 기성세대를 통해 설익거나 거친 방식을 조율할 수 있다. 2030의 감성과 5060의 경험을 아우를 때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한다.

- <월간 ‘사진기자’ 2월호> (2003.2)

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