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2월 10일 No. 597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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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의실의 휴대전화

홍콩 어느 헬스 클럽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큰 소리로 전화하는 무례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로 탈의실에서 남의 알몸을 찍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능까지 있으니까 사진을 곧장 여러 곳에 보낼 수도 있다. 탈의실에서 무심코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가는 '몰카' 촬영 혐의를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는, 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 광고를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예사롭게 지나쳐지지 않는다. 차태헌이 휴대전화로 이나영의 모습을 찍어서 화상을 180도로 돌리기도 하는데, 이를 본 이나영이 차태헌의 머리를 잡아 돌리면서 "까불면 돌린다."고 말한다. '돌린다'는 말, '널리 퍼뜨린다'는 뜻으로도 흔히 쓰이는 말 아닌가.

내 휴대전화에는 카메라 기능이 없지만 이런저런 기능이 많다. 그래봐야 전화 걸고 받고 번호 기억시키고 하는 것이 고작이다. 하긴, 녹음 기능을 아주 드물게나마 써먹는다. 넓은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난 뒤 기둥 번호를 녹음해 두면 나중에 차 찾을 때 편하다. 그리고 화면 발광 기능, 이것이 가끔 요긴하게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밤늦게 연구실 불을 끄고 껌껌한 복도에 나와 문을 잠글 때, 열쇠 꽂을 구멍을 찾는 데 쓴다.

휴대전화에 관해 나는 보수적이다. 신형 휴대전화가 나올 때마다 새 기능이 덧붙지만, 전화는 역시 전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것이 으뜸이다. 나머지는 장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전화기 값만 비싸게 한다. 나는 인터넷 기능이나 카메라 기능이 있는 것보다는 '잘 터지고' 배터리 수명이 긴 것이 좋은 휴대전화라고 생각한다. '정보화 마인드'에 거슬리는 소리가 될까. 나같은 사람만 있으면 기술이 잘 개발되지 않겠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아 다행이다.

- 벼룩시장 <즐거운 인터넷 여행> 200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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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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