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2월 7일 No. 596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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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심에 멍드는 사회

복권(福券)을 처음 발행한 것은 로마의 폭군 네로다. 로마를 불태우고 나서 건설자금이 모자라자 강제로 복권을 팔아 자금을 조달했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도 재산이나 노예를 나눠주기 위해 복표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교회 재산과 황실 재정을 늘리는 수단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에서 복권을 발행했다. 아슈톤의 '영국 도박사'에 따르면 16세기 중엽 영국 황실에서는 1등 저택, 2등 보석, 3등 장신구를 내 걸고 3파운드 짜리 복권을 팔아 30만 파운드의 황실 재정을 벌어들었다. 당첨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현재의 형태와 같은 복권은 1930년 이탈리아의 피렌체 지방에서 발행한 '피렌체 복권'이 시초다.

우리나라는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후원하기 위해 1947년에 발행된 올림픽 후원권이 근대복권의 효시다. 1956년 산업부흥과 복지자금 조성을 목적으로 발행한 '애국복권'이 그 뒤를 이었다. 1등 당첨금은 100만환. 당시 사과 1상자가 3,000환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단 한번 당첨으로 부자가 되기에 충분했다. 1969년 주택은행에서 발행한 추첨식 '주택복권'이 300만원의 1등 당첨금을 걸고 탄생했다. 무주택 군경유가족 등의 내 집 마련 지원을 목적으로 발행되면서 본격 복권시대의 막이 올랐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전엑스포복권 발행을 시작으로 체육복권에 이어 기술·복지·기업·자치·관광복권이 잇달아 나왔고 즉석식 복권의 발행과 함께 복권시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요즘은 인터넷복권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르며 금융, 포털, 이동통신 업체까지 가세하면서 인터넷복권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다. 복권시장에 경쟁이 붙으면서 당첨금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인생역전' 노리는 한탕주의 만연

지난해 등장한 온라인 로또(Lotto)복권은 65억원대의 국내 복권사상 최고의 당첨금이 나오면서 '로또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다. 로또는 고객이 OMR카드(로또 슬립)를 구입한 뒤 총 45개의 숫자중 6개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직접 번호를 선택하기 때문에 1등 당첨자가 여러명 나올 수 있다는 데 기대감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1등이 여러명이면 당첨금을 나눠 갖고 당첨자가 없을 경우 다음 회차로 이월된다는 점에서 사행심을 더욱 부추긴다.

특히 대도시 직장인들 사이에 "사자" 열풍이 불어 점심시간이면 복권 판매코너 앞에 장사진을 이룬다. 아파트 값도 떨어지고 주식 시장도 별로인 데다 직장에서의 위치 마저 불안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로또를 사는 것이다. 직장마다 당첨확률을 높이기 위해 복권을 공동으로 다량구매한 뒤 당첨금을 균등 배분하는 '로또계'가 성행할 정도로 과열현상을 보이고 있다니 '대박 열풍'을 짐작할 수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거리에는 '인생역전 해볼까요'라는 충동적인 복권광고가 넘친다. 티켓이나 잡지를 팔며 병행했던 판매점도 이젠 '복권방' 이라는 전문점으로 바뀌었다. 소형 트럭을 개조해 사람들의 왕래 가 많은 지역을 찾아다니는 이동 판매대도 눈에 띈다. 오프라인만이 아니라 온라인과 모바일 전화로 언제, 어디서든지 복권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앞장서 '한탕주의'와 사행심을 부추기는 꼴이다. 부처마다 기금이나 출연금 재원 마련을 명분으로 앞다퉈 복권시장에 뛰어 들었기 때문이다. 국내 복권시장은 10여개의 인터넷 전용복권을 제외하더라도 9개 부처 11개 기관에서 23종의 복권을 발행하여 '복권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다.

복권에 당첨돼 뉴스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소년가장, 실직자, 셋방살이 등 고단한 삶의 주인공들이 많다. 답답한 생활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는 심정으로 복권을 사는 서민들이 많은 탓이다. 서민들은 당첨의 행운을 차지한 사람들에게 "고생 끝에 복을 받았다"고 갈채를 보내면서도 내심 부러움과 기대로 복권판매대를 기웃거린다.

마구잡이 복권사업 제도적 정비를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 당첨 금액이 큰 복권은 일확천금의 기회로 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당첨확률은 800만분의 1로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복권을 샀다가 역시나로 한숨을 토하며 쌈짓돈만 축낸다. 여유 돈을 모아 공익사업의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복권발행 취지와도 거리가 멀다.

복권 열풍은 자칫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고, 한탕주의가 만연하게 할 위험을 안고 있을 뿐 아니라 비리와 범죄를 유발하는 부작용까지 우려된다. 사행심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으기가 어렵고, 빈부격차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복권시장 규모는 1998년 3,209억원에서 2001년에는 이의 2배인 7,304억원으로 커진 데 이어 지난해는 9천억원대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밑바닥에 깔고 경마, 경륜, 경정, 내국인 카지노 같은 사행산업도 호황을 누리고 있어 지금 우리사회는 '대박병' '도박병'이 심각한 상태다. 우리나라 성인의 도박중독 비율은 외국의 2%대보다 훨씬 높은 9.3%로 300만명이 도박에 중독돼 있으며 사행산업의 시장규모도 지난해 11조원을 웃돌았다.

한탕주의의 만연은 경제구조의 부실화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다. 로또의 1인당 구매한도를 10만원 이하로 정하고 미성년자에게 팔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나 사실상 지켜지기 어렵다. 미온적인 대처로는 '사행심 중독증'을 치유할 수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마구잡이로 늘어난 복권사업을 정비하고 당첨 금액도 적절한 수준에서 제한하는 방향으로 제도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복권발행조정위원회를 통해 복권사업이 과열되지 않도록 규모를 제한하고, 각종 복권 발행의 근거를 명확히 규정한 통합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저널 뉴 코리아 2월호> (2003.02)

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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